“지금은 마녀사냥을 하던 중세가 아니다. 법조계와 경영계 일부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면책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법의 체계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그냥 이 법이 싫은 것으로 생각된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는 2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진행된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중대재해전문가넷) 창립 기념 심포지엄’에서 이같이 말하며 경영계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는 이날 ‘중대재해처벌법 개정논의 현황과 과제’를 발표했다.

“어렵게 제정된 법, 부족한 점 극복 모색해야”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을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규정이 모호해 위헌 소지가 있고 법정형이 과도하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취지를 볼 때 개념이 모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법원 판례를 통해 축적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대재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권 교수는 먼저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과정을 짚었다. 그는 “2019년 전면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대기업일수록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근로자나 시민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침해행위에 대해 경영진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어렵다는 모순적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 등에게 직접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부과해 처벌하고, 양벌규정을 통해 법인을 처벌한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조항을 두고 반발하는 기업을 비판했다. 최근 대형 로펌들을 주축으로 자문 기업이 기소될 경우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준비한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가 나온 바 있다. 경영계와 일부 로펌 변호사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정한 ‘경영책임자 등’과 ‘안전·보건 확보의무’의 개념이 모호해 죄형법정주의에 반하고, 법정형이 과도해 ‘책임 원칙’에 벗어난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권 교수는 “모든 법 조항을 해석의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다면 ‘법학자’는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며 “입법의 조악함을 핑계로 아직 기소된 사례조차 없는 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위헌성을 언급하는 것은 그리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법률의 위헌성을 운운하기보다는 어렵게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의 다소 부족한 입법기술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가 2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진행된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중대재해전문가넷) 창립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가 2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진행된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중대재해전문가넷) 창립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하고 있다.


“개념은 법원 판례로 축적될 것”

‘경영책임자’나 ‘안전·보건 확보의무’에 대해서도 개념이 모호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배경과 조문 구조, 다른 법령과의 정합성 등을 살펴보면 개념이 그렇게 모호한 것도 아니다”며 “규범적 용어 개념의 외연은 향후 법원 판례의 축적으로 형성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토대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는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법정형이 과도하다는 주장을 두고도 중대재해처벌법은 ‘고의’로 중대재해를 일으켰을 때만 경영책임자를 처벌하기 때문에 ‘책임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사업주가 안전·보건의무를 위반했더라도 중대재해를 일으키지 않으면 처벌되지 않고, 반대로 중대재해가 발생했더라도 기업이 안전·보건의무만 지키면 처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현행법은 ‘미수범’을 처벌하지 않는다.

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시 하나의 재해로 여러 명이 사망해도 하나의 범죄만 성립하는 점 △형법상 ‘정상참작감경’으로 감경이 가능한 점 등을 근거로 실제 선고형은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