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전경.


공무원 보수를 기준으로 교직원에게 급여를 지급한 사립대가 과거의 공무원보수규정을 따르도록 취업규칙을 변경한 것은 위법이라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매년 인상되는 공무원 보수 수준이 반영되지 않으면 사실상 교직원의 보수가 동결 또는 삭감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취지다. 유사한 형태로 급여를 지급하는 다른 사립대 사건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물가 오르는데, 6년간 과거 보수 적용
엇갈린 하급심, 2심 “자율성 침해”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지난 17일 전남 나주의 D대 교수 A씨 등 3명이 학교법인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4년7개월 만이다.

D대는 교원의 보수를 이사회 의결을 거쳐 공무원보수규정에 따라 지급해 왔다. 그런데 학교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 당해연도가 아닌 과거의 공무원보수규정에 따라 교직원들에게 보수를 지급했다. 2014년에는 2013년의 규정을, 2015년~2017년에는 2014년의 규정을, 2018년~2019년에는 2015년의 규정을 각각 적용했다. 사실상 급여가 삭감된 셈이다.

그러자 A씨 등은 이사회 의결이 위법이라며 소송을 냈다. 이들은 “매년 물가상승률이 고려된 공무원보수규정에 따라 보수를 지급해야 하는데도 근로자들의 동의 없이 취업규칙인 교직원보수규정을 변경했다”며 보수 차액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1심은 대학이 과거의 공무원보수규정을 적용해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과거 공무원보수규정을 매년 적용한 결과 임금인상률 등이 적용되지 않아 원고들의 수익에 적지 않은 손실을 초래하게 됐다”며 학교측이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고 판시했다.

반면 항소심은 교직원들에게 불리한 보수규정 변경이 아니라며 A씨 등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물가상승률만큼 보수가 인상되지 않은 것은 물가상승에 따라 받는 반사적 피해일 뿐이라고 봤다. 호봉제도 여전히 적용돼 호봉이 올라가면 급여도 인상된다는 점도 고려했다.

아울러 사립학교의 보수를 공무원과 동일하게 지급하도록 강제하면 대학의 자율성과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D대가 2013년~2017년 등록금을 동결하고 입학정원이 감소해 교직원 보수 동결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사립대 보수’ 최초 판결, 줄소송 전망도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을 다시 뒤집었다. 대법원은 공무원보수규정 4조에서 정한 보수는 ‘당해연도의 보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교직원보수규정이 취업규칙에 해당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교직원보수규정을 연도와 관계없이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취지로 해석하면 대학이 자의적으로 교직원의 보수를 동결 또는 삭감할 수 있어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된다”며 “2013년까지 거의 매년 공무원의 봉급월액이 인상됐고, 대학은 이에 따라 보수를 지급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형식적으로 교원의 보수가 삭감되지 않았더라도, 당해연도의 공무원보수규정을 적용함에 따른 임금인상 권리나 이익은 종전 취업규칙의 보호영역에 의해 보호되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익”이라고 판단했다.

A씨 등을 대리한 김광산 변호사(법률사무소 교원)는 “대학이 이사회 의결로 특정 연도의 공무원보수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불이익변경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라며 “그동안 많은 사립대의 하급심 사건에서 위법이라는 판결이 있었지만, 대법원에서 명확히 선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번 판결로 사립대 교직원들의 소송에도 상당한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국립대 교원 봉급에 준해 보수를 받은 부산 동아대 교직원들이 임금 소송을 내 지난해 9월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경성대는 2012년부터 교직원 임금을 동결했다가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법조계는 유사한 형태로 운영하는 사립대 교직원들의 줄소송도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