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식당 조리실에서 10년간 일하다 폐암이 발병한 조리실무사가 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4월 근로복지공단이 최초로 급식노동자의 폐암을 산재로 인정한 뒤 직업성 암으로 인정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흡연에도 ‘폐 샘암종’ 걸려
3천명분 식사 준비 ‘조리흄’ 노출
2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전주지법 군산지원 익산시법원 박병칠 판사는 지난달 14일 원광대병원 직원 A씨가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 지급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2009년 3월 원광대병원 직원식당 조리실에 기간제 노동자로 입사해 6년간 근무하다가 2015년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그런데 2018년 정기 건강검진에서 ‘폐 샘암종’을 진단받았다. 폐 샘암종은 전체 폐암의 약 4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수술과 통원치료를 받은 A씨는 이듬해 7월 공단에 직무상요양승인을 신청했다. 그런데 공단은 “폐 샘암종의 가장 중요한 발병 원인은 흡연으로 알려져 있다. 개인의 신체적인 조건에 따라 자연적 시간경과에 의해 병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 관련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연금급여재심위원회도 작업환경의 유해물질 노출 정도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A씨는 유해물질에 노출돼 폐암이 발병한 것이라며 2020년 8월 소송을 냈다. A씨측은 “폐암의 주요 발병인자로 꼽히는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고, 폐암 가족력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재판에서 A씨측은 유해물질 노출 가능성을 강조했다. A씨는 입사 3년차에 저염식 등의 ‘치료식’ 조리업무를 맡다가 5년차부터 일반식과 치료식을 번갈아 담당했다. 조리실에서 만드는 하루치 음식은 총 3천명분에 달했다. 그는 입사 1~2년차에도 조리부와 영양팀에서 상차림과 배식 업무를 비롯해 세척을 담당했다. 한 달 간격으로 오전·오후 교대조가 바뀌며 하루 평균 9~10시간 일했다.
A씨측은 음식이 타면서 방출되는 검댕인 ‘조리흄’이 발암 가능성을 높였다고 주장했다. 조리흄 속 다환방향족 탄화수소는 국제암연구소에서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A씨가 하루 9시간 이상 일하는 과정에서 ‘조리흄’에 노출됐다는 것이다. A씨 대리인은 “가스를 사용하며 타거나 그을린 음식의 연기에 포름알데히드 등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뜨거운 물에 락스 풀어 그릇 세척
전문의 “세척제 노출로 폐암 가중효과”
‘세척’ 과정에서도 유해 물질은 발생했다. 하루 세 번 이상 뜨거운 물에 락스를 풀어 그릇을 불렸다. 식기세척기에 들어갔다가 나온 그릇의 설거지를 수월하게 하려는 방법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락스와 혼합된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A씨 대리인은 “락스는 가열하거나 뜨거운 물에 용해할 경우 염소가스가 발생할 수 있어 함께 사용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조리실 환경은 열악했다. 동료 진술에 따르면 냉방과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여름철 조리실 온도는 40도에 육박했다. A씨가 고온에 노출돼 위경련을 일으켜 응급실에 간 적도 있었다. 대리인은 “환기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면 조리와 세척 과정에서 가열된 연기가 외부로 배출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직업환경의학전문의 2명은 “10년간 작업장 환기가 부적절한 조리실 환경에서 조리와 세척 업무를 직접 담당했다는 것이 확실히 추정된다”며 “세척제 등의 노출로 폐암 발생의 가중효과가 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소견을 냈다.
법원은 A씨측 주장을 받아들여 폐암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공단은 A씨에게 요양급여와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A씨를 대리한 곽예람 변호사(법무법인 오월)는 “이번 판결은 단체 급식실의 조리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조리흄 등의 물질과 폐암 발생 사이에 높은 연관성이 인정됐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며 “특히 환기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 이에 노출될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