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규칙으로 정한 1년 계약기간 안에 수차례 계약을 갱신했다면 업무수행 능력에 문제가 없는 이상 계약이 만료됐더라도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취업규칙에서 정한 1년 계약기간을 특별한 사유 없이 3개월로 단축해 계약한 것은 위법하다고 봤다. 노동자의 업무태도 불량을 이유로 사전에 근로계약기간을 단축한다면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을 잠탈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출근하면 업무방해 고발” 계약 만료
노동위 “취업규칙 특별한 사유” 판정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10부(재판장 성수제 부장판사)는 지난달 22일 아파트 관리소장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2018년 10월 서울 금천구의 한 아파트 관리업체인 B사에 입사해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근무했다. 이후 총 다섯 차례 근로계약을 갱신한 후 2020년 1월 근로기간을 3개월로 정해 다시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자 날벼락이 떨어졌다. 그해 3월31일 사측은 “오늘이 계약 종료일이다. 만일 내일 출근하면 업무방해로 고발될 수 있다”고 A씨에게 통보했다.
그러자 A씨는 부당해고라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하지만 지노위는 “반복적인 갱신만으로 갱신기대권을 갖는다고 볼 수 없고, A씨의 불성실한 근무행태와 다른 직원들과의 불화를 고려해 갱신을 거절한 것으로 보인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중노위도 근로계약과 관련한 취업규칙이 적법하다며 초심을 유지했다. B사의 취업규칙은 “근로계약기간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계약체결일로부터 1년을 원칙으로 한다”고 정했다. 중노위는 ‘특별한 사유’에 당사자 간의 합의가 포함된다고 봤다. 그러자 A씨는 2020년 10월 소송을 냈다.
법원 “사전 단축은 강행규정 위반”
“개별 동의로 취업규칙 변경은 위법”
쟁점은 단기계약이 취업규칙상 ‘특별한 사유’에 해당하는지였다. 사측은 재판에서 “A씨가 권위적인 태도를 보여 직원 5명이 퇴사하는 등 관리소장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며 “계약의 추가 연장을 검토하기 위해 계약기간을 3개월로 정했다”고 항변했다.
1심은 업무태도 불량을 취업규칙의 ‘특별한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후에도 A씨가 근무태도를 개선하지 않아 해고사유가 명백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취업규칙에서 정한 해고예고 등을 거쳐 해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근무를 계속할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근로계약기간을 사전에 단축했으므로 근로기준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항소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사측은 2심에서 “A씨의 태만한 근무행태와 직원들과의 불화, 입주민과의 갈등에 비춰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할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근로계약기간을 1년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취업규칙의 ‘특별한 사유’에 직원의 동의가 있는 경우가 포함된다고 해석할 경우, 곧바로 1년보다 단기의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된다”며 “취업규칙에 강행적·보충적 효력을 부여하고자 하는 근로기준법 취지에 배치돼 허용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취약한 지위에 있는 개별 직원의 동의만으로 취업규칙을 기준 이하로 낮추면 노동자에게 불리한 상황이 가능해질 위험이 있다는 취지다.
이를 전제로 근로계약 갱신의 정당한 기대권을 인정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계약기간을 1년으로 정하도록 규정한 취업규칙에 따라 최소한 1년의 계약기간은 보장돼야 한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나아가 입주민들과의 불화 문제는 갱신거절의 합리적인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근로계약기간이 도과됨으로써 근로관계가 종료됐다고 판단한 재심판정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