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파견을 나갔더라도 본사 지휘에 따라 근무하다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해외파견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국내 노동자와 근무형태가 같은 경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을 적용받을 수 있다는 취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김국현 부장판사)는 해외 파견 노동자 A씨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10일 밝혔다. 유족이 소송을 낸 지 4개월 만이다. 공단은 지난 7일 항소했다.
UAE 공사현장 파견 중 급성 심근경색
공단 “산재보험법 미적용” 산재 불승인
A씨는 2001년부터 9년여간 도장공사업체인 B사의 국내 공사현장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했다. 그러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현장의 아부다비 지사 추천에 따라 2015년 5월께부터 UAE에서 일했다. 그는 아부다비 지사에서 반장으로 근무하며 인원배치·작업지시·공사현장 점검 및 정리 등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던 중 2020년 5월께 근무 중 통증을 호소해 스텐트 심장동맥성형술을 받았지만 9일 뒤 심정지로 사망했다. 그러자 A씨의 아내는 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급성 심근경색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지만, 고인이 별도의 보험가입 없이 해외파견 중 사망해 산재보험법 적용대상이 아니다”며 거부했다. A씨 아내는 지난해 7월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A씨가 해외에서 본사의 지휘·감독을 받았는지 여부였다. 회사의 지시로 국외 사업에 노동자를 파견했을시 해당 직원은 산재보험법 적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A씨와 체결한 해외사업부 근로계약에는 ‘업무상 재해 발생시에는 산재보험과 근재보험으로 보상한다’고 돼 있다.
또 산재보험법 122조1항은 ‘보험가입자가 대한민국 밖의 지역에서 하는 사업에 근로시키기 위해 파견하는 사람에 대해 공단에 보험 가입 신청을 해 승인을 받으면 해외파견자를 가입자의 대한민국 영역 안의 사업에 사용하는 근로자로 볼 수 있다’는 해외파견자에 대한 특례를 명시하고 있다.
“근무장소가 해외일 뿐, 본사에서 급여받아”
법원은 “A씨의 근로장소만 국외일 뿐, 실질적으로 본사에 소속해 그 지휘에 따라 근무해 산재보험법이 적용된다”며 A씨 아내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씨가 UAE 공사만을 위해 채용된 것이 아니며 근무부서도 본사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회사 전무로부터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했고, 본사로부터 급여를 받는 등 해외파견자로 파악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본사가 A씨의 소득세를 원천징수한 부분도 근거로 들었다. 회사가 발급한 원천징수영수증에는 A씨가 파견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A씨를 포함한 아부다비 지사 직원들의 승진 및 휴가 등 인사에 대해서도 본사가 확정해 시행했다. 숙소와 항공비용 역시 본사에서 지급했다. 이를 토대로 재판부는 “A씨가 본사에 소속된 직원”으로 파견근로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A씨 유족을 대리한 김용준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해외파견 근로자의 산재에 대해 보호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고인은 근무장소가 해외일 뿐 실질적으로 본사에 귀속돼 국내 근로자와 같은 지위에 있었다는 점이 인정된 사건”이라며 “회사가 직원을 파견해 망인을 지휘·감독한 점, 고인이 약 9년 동안 이 사건 국내 공사현장에서 근무해 해외 공사의 종료만으로 근로관계가 종료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