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전경.
대법원이 수습사원으로 근무한 기간도 퇴직금을 산정할 때 반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수습기간은 단순한 실무전형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한 시용기간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시용’은 본 근로계약 체결 이전에 업무 적격성을 관찰하고 평가하기 위해 시험적으로 고용하는 것을 말한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지난 17일 제주 서귀포의료원 직원 A씨가 의료원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제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하루 차이로 ‘퇴직금 누진제’ 미적용
하급심 ‘수습 근로 계속성’ 불인정
A씨는 1999년 12월1일 서귀포의료원에 수습사원으로 입사한 뒤 한 달간 실무실습을 거쳐 이듬해 1월1일 임시직으로 채용됐다. 1년간의 임시직 기간이 만료되자 정규직으로 채용됐고, 18년 동안 근무한 후 2018년 3월 퇴사했다.
그런데 의료원이 2000년 1월 보수규정을 바꾸고 입사기준일을 2000년 1월 전후로 나눠 퇴직금을 다르게 산정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의료원은 1999년 12월31일 이전 입사자에 대해서는 5년 이상 근속시 ‘퇴직금 누진제’를, 2000년 1월1일 이후 입사한 경우 근속연수와 상관없이 ‘퇴직금 단수제’를 적용했다.
이에 따라 A씨는 평균임금에 근속연수를 곱한 약 8천만원을 퇴직금으로 수령했다. 하지만 A씨는 입사 시기가 수습사원으로 채용된 1999년 12월1일이고, 5년 이상 근무했기 때문에 퇴직금 누진제를 적용해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2018년 9월 소송을 냈다. 퇴직금 누진제를 적용했을 경우 A씨는 추가로 5천여만원의 퇴직금을 받게 된다.
1심은 A씨의 입사일은 임시직 채용일인 2000년 1월1일로 봐야 한다며 A씨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수습기간의 급여는 일당을 기준으로 산정돼 임금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임시직 채용기간 만료 후 1년간의 퇴직금을 받은 점 △개정된 보수규정은 기존 근로자들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것이 아니라 근로자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항소심도 “수습기간의 급여는 의료원의 보수규정과 다른 방식으로 산정된 것이고, 임시직 근로자와 동일한 조건에서 근무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수습기간 근무와 임시직 근로자로서의 근무 사이에 근로관계의 계속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수습기간의 급여 지급일이 정규직과 다르고 근무 형태에 차이가 있는 점도 작용했다.
대법원 “단순한 실무전형 아냐”
“수습기간도 계속근로기간 포함”
그러나 대법원은 수습사원 근무기간을 ‘계속근로기간’으로 봐야 한다며 2심을 뒤집고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씨가 수습사원으로 근무한 기간은 단순히 실무전형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한 시용기간에 해당한다”며 “A씨가 수습기간 만료 후에도 계속 근무한 이상 수습사원 근무기간도 퇴직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계속근로기간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시용기간 만료 후 공백기간 없이 계속해 근무한 경우에도 시용기간을 포함한 기간을 퇴직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계속근로기간으로 봐야 한다는 기존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참조했다.
A씨를 대리한 이학준 변호사는 “노동자를 사용했으면 그 기간은 퇴직금 계산에 반영해야 한다는 판결”이라며 “시용·수습·임시직이라는 이름으로 퇴직금 지급 회피를 위해 ‘꼼수’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