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이른바 공사장 ‘십장’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해 작업팀장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법조계는 ‘십장’도 사업장에 노무를 제공했을 경우 보호 대상으로 볼 수 있으므로 중대재해를 입으면 법의 적용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작업팀장, 형틀작업 도중 화재로 사망
법원 “독립 사업자, 근기법상 근로자 아냐”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이종환 부장판사)는 인천 부평구 한 주상복합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2018년 3월 사망한 A씨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씨는 건설업체 B사의 돈을 받고 2017년 9월부터 부평구 신축공사 현장에서 목수 형틀작업을 담당했다. 일용직 노동자들의 작업팀에서 대표 역할을 하고 노임을 분배하는 이른바 ‘십장’이었다.
사건은 2018년 3월30일 발생했다. 일용직 노동자가 용접작업을 하던 중 불꽃이 단열재에 튀면서 대형화재로 번졌고, A씨는 전신화상을 입어 그 자리에서 숨졌다. 화재로 인해 A씨 등 총 3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A씨 유족은 A씨가 B사의 근로자로서 업무상 재해로 사망했다며 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공단이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지급을 거부하자 유족은 2020년 10월 소송을 냈다.
법원은 A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망인은 근로자의 지위에서 형틀작업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당시 독립된 사업자의 지위에서 일하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판시했다. 독자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운영한 ‘사업자’라는 취지다.
그러면서 B사가 구체적인 작업과 관련해 A씨에게 별다른 지시·감독을 하지 않았고, A씨가 인력 수급부터 일용직 근로자의 노임 결정 등에 독자적인 결정권이 있었다고 봤다. A씨가 팀 전체 임금을 수령한 뒤 팀원에게 나눠주고 남은 돈을 자신이 가져간 점과 다른 공사현장에서 형틀작업을 수행한 부분도 판단 근거로 삼았다.
근로자성 무관하게 수급인, 중대재해 적용
A씨 사례처럼 법원이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을까. 작업팀장이 실제 노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보호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을 높인다. 중대재해처벌법(2조7호 다목)은 사업이 여러 차례의 도급에 따라 행해지는 경우 각 단계의 수급인도 ‘종사자’에 해당한다고 정하고 있다. 하청업체 대표뿐만 아니라 공사를 맡은 작업팀장도 중대재해의 보호 대상이 된다.
대검찰청은 ‘중대재해처벌법 벌칙해설서’에서 “수급인이 업무와 관계되는 설비 등이나 작업 그 밖에 업무로 인해 사망한 경우에도 중대산업재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며 노무를 제공하는 수급인을 보호 대상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개인 기업 형태의 수급인이 보호를 받으려면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입법 취지와 검찰 해석을 반영하면 ‘십장’은 근로자 여부와 무관하게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아 도급인이나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직접 노무를 제공해 위험에 놓인 경우 작업팀장도 보호 대상이 된다”며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사건에서 근로자로 보지 않더라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십장’의 근로자성과 관련한 법원의 판결은 엇갈린다. 대법원은 2018년 공사현장에서 추락해 전신마비가 된 작업팀장이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작업지시자가 직접 업무를 지시했고, 자재 구입비용을 직접 부담하지 않았다는 작업팀장쪽 주장이 받아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