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노조

공공·금융노동자들이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예산운용지침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한국노총 공공부문노조협의회(공공노련·공공연맹·금융노조)는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획재정부가 매년 350여개 공공기관의 예산 편성과 집행 등에 관련한 예산운용지침을 시행해 공공기관 총인건비는 물론 복리후생제도까지 세세히 통제한다”며 “지침에 의한 공공기관 노조의 단체교섭권 침해가 일상화해 헌법소원으로 바로잡고자 한다”고 밝혔다.

기재부, 공공기관 총인건비 자의적 규제

기재부는 매년 다음연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운용지침을 마련해 시행한다. 지침에는 기관의 총인건비 인상률이 담기는데 매년 공무원 보수 인상률과 같게 책정한다. 사실상 기재부가 모든 공공기관의 임금인상률을 정하는 것이다.

올해 예산운용지침도 마찬가지다. 기재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2년도 예산운용지침을 보면 총인건비 인상률을 인건비 항목과 복리후생비를 포함해 지난해 예산의 1.4% 이내로 편성하도록 하고 있다. 또 “2021년도 총인건비 인상률을 위반한 기관은 인상률 위반 금액만큼 인건비를 감액해 편성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올해 1.4% 이상 임금을 인상하면 내년 예산에서 해당액을 감액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런 지침이 단체교섭을 무력화한다고 강조했다. 박해철 공공노련 위원장은 “지침은 350여개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지방공기업까지 실질적으로 통제한다”며 “이는 헌법에서 보장한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철저하게 무력화하는 악법으로, 이를 폐기하지 않고는 더 이상 공공기관 단체교섭이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복리후생제도도 기재부 입맛대로 조종할 수 있다. 최근 공공부문 노동계 문제로 떠오른 사내대출제도 개정이 대표적이다. 공공기관 노사는 단체협약으로 주택자금 대출과 가계 안정자금 대출을 직원들에게 제공한다. 이는 기재부가 시행한 공공기관의 혁신에 관한 지침(2020년 8월26일 개정)에도 명시된 사항이다. 그러나 기재부는 돌연 지난해 7월 지침을 개정해 사내대출제도 한도와 이율 등을 자의적으로 규제하고, 이를 어길시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실제 같은해 10월 기재부 산하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공공기관 경영평가편람을 수정해 사내대출제도 개정 여부를 평가하기로 했다. 공공기관 노사가 자율적으로 체결한 단협을 무력화한 것이다.

ILO 98호 “공공노동자, 단체교섭권 완전 향유”

노동자들은 이런 시도는 헌법 위반일 뿐 아니라 지난해 정부가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정면으로 배치한다고 비판했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우리 정부가 체결하고 국회가 비준해 4월20일 발효를 앞둔 ILO 기본협약 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는 공공부문에서 정부의 기준 설정 기능과 교섭 과정 개입을 인정하더라도 공공서비스 종사자는 단체교섭권을 보장받도록 하고 있다”며 “그간 그저 불합리한 수준으로 인식했던 기재부의 예산운용지침은 위헌일 뿐 아니라 공공기관에 대한 수탈”이라고 비판했다.

ILO 98호 협약은 공공서비스 종사자에 대해 “단체교섭권을 완전히 향유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또 입법기구에 예산과 관련한 권한을 유보했다고 해서 단체협약을 무효화할 수 없고 이를 제한하는 정부기구의 재정적 권력행사도 협약 위반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지침을 통해 공공기관 노동자의 임금을 규제하는 것은 협약과 배치된다.

사건을 대리하는 신의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는 “ILO 98호 협약 국회 비준은 4월21일이고 기재부의 예산운용지침은 같은해 12월9일 확정했다”며 “해당 지침을 시행할 때 ILO 기본협약 98호와의 충돌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강행했다는 점에서 지침에 대한 협약의 규범력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 노사관계 결정하면서 사용자성 ‘나 몰라라’

기본권 침해 문제도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단체교섭권은 단결권·단체행동권과 함께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다. 헌법 37조2항은 기본권을 제약할 때는 법률로만 가능하도록 하고 있고, 그마저도 본질적 부분은 침해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신 변호사는 “공공기관 노동자의 헌법상 권리인 단체교섭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하면서도 법률이나 시행령도 아닌 지침에 의하고 있어 위헌적이고, 복리후생비 같은 자치영역까지 강제하고 있어 ‘필요한 만큼만 제한하라’는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기재부가 지침으로 노동조건을 사실상 결정하면서 공공기관 노동자의 교섭 상대인 사용자도 모호한 상태다. 류기섭 공공연맹 위원장은 “기재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임금과 노동조건이 결정되는데 정작 기재부는 교섭에 나타나지 않는다”며 “공공기관 노동자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향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누구와 교섭해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그는 “실질적 사용자인 정부와 교섭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 임금결정위원회 같은 거버넌스 개혁을 이루고 정부와 공공노동자가 교섭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