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가 삼성화재평사원협의회노조와 교섭을 재개하기로 했다. 서울고법이 삼성화재노조가 삼성화재를 상대로 제기한 단체교섭 중지 가처분 소송에서 “삼성화재평사원협의회노조와 교섭을 중단하라”던 1심 판결을 뒤집고 사측 손을 들어준 여파다. 삼성화재노조는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평사원협의회와도 교섭을 해서는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삼성화재가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가진 평사원협의회노조와 임금·단체협약을 체결할 경우 삼성화재노조는 이미 체결된 단체협약의 효력이 상실되기 전까지 사측에 교섭을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화재노조는 이달 1일 바로 서울고법 판결에 불복해 재항고했다.
삼성화재노조 “우리가 승소했을 때는 교섭 거부하더니”
서울고등법원 제1민사부(재판장 전지원)는 최근 사측이 1심 판결을 불복해 제기한 항고심에서 “삼성화재평사원협의회노조 설립이 무효라거나, 노조로서 법적 지위를 가지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과 정반대 판결을 했다. 주요 요지는 “다수의 근로자(3천여명)가 참가인(평사원협의회노조)의 조합원으로 가입한 상황이라면, 명백하게 반대되는 사정이 없는 한 위 근로자들이 참가인의 정책 방향에 동조하고 참가인이 위 근로자들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노조라고 판단해 그 조합원으로 가입한 것으로 봐 그 단결 의사를 존중함이 옳다”는 것이다.
삼성화재측은 <매일노동뉴스>에 “삼성화재평사원협의회노조와 관련 협의를 재개할 예정인데, 아직 구체적인 향후 일정이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삼성화재와 평사원협의회노조는 2021년 임금협약 잠정합의안에 합의했고, 평사원협의회노조는 조합원 찬반투표까지 마쳤다. 하지만 같은해 9월3일 삼성화재노조가 삼성화재를 상대로 제기한 단체교섭중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법이 인용하면서 단체교섭이 중단됐다.
지난해 12월 1심 판결이 나온 직후 삼성화재노조는 교섭을 요구했는데 사측은 응하지 않았다.
오상훈 삼성화재노조 위원장은 “사측은 삼성화재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때는 재판이 최종 확정된 상태가 아닌 데다가 삼성화재노조와 교섭을 하라는 판결이 아니라며 버텼다”며 “재항고심에서 확정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평사원협의회와도 교섭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규약변경 개정 절차 흠결에도
서울고법 “노조설립 후 온라인총회했으니 괜찮다”
앞선 가처분 결정, 1심 판결과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린 서울고법의 판결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고법은 평사원협의회노조 설립의 절차적 흠결을 주요하게 살피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서울고법은 “평사원협의회노조 설립총회 당시 노조설립에 동의한 3천76명의 근로자가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며 “노조설립을 추진한 14명이 참석해 이뤄진 설립총회에 의사정족수 미달의 하자가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지난 9월 서울중앙지법은 “(2021년) 3월22일 기준 조합 가입자수는 135명으로 확인된다”며 “평사원협의회노조가 주장하는 14명만이 참여해 열린 임시총회(3월26일) 결의에서 의결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한 중대한 흠이 있다”고 가처분 인용 결정을 내렸고, 1심 판결도 이와 같았다.
평사원협의회노조가 노조 설립신고 당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규약 보완 요구에 규약변경을 위한 조합원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를 진행한 것을 입증하지 못한 것은 “노조설립이 무효로 인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가처분 결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규약 개정에 관한 절차적 하자가 삼성화재평사원협의회노조의 설립 자체를 무효로 만드는 사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노조가 이미 설립된 후인 7월1일 온라인 총회를 개최해 규약 변경안을 의결했다는 이유에서다.
삼성화재노조를 대리한 문성덕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절차적 하자가 있어 문제라고 제기했으면 법원은 절차적 하자가 있다, 없다를 명확히 판단해야 하는데 2심 재판부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다”며 “7월1일 총회를 열어 규약변경안이 통과됐으니 된 거 아니냐는 식인데 이는 판례·법리에도 반하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지난해 7월 삼성화재노조가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한 삼성화재평사원협의회노조 설립무효 소송은 심리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