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한다. 법이 잘 안착할지, 중대재해를 초래한 경영책임자를 엄중 처벌해 산재를 예방한다는 법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새 제도가 시행하면 노사정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문가에게 들어 봤다.


의무는 지키고, 50명 미만 사업장 시행 준비해야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장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장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장

먼저 지난 11일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 참사로 실종되거나 사망한 노동자와 가족에게 애도와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실종된 노동자들의 무사 귀환을 바란다.

경영계에 바란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공포된 후, 일부 로펌과 언론에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공포감을 조성함에 따라 기업이 안전보건 역량 강화보다는 앞다퉈 처벌 회피를 위해 법적 수단을 강화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잘못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준수하고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정부에 바란다. 전체 산업재해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50명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이제 2년밖에 남지 않다.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 공포와 함께 본법 16조(정부의 지원)가 시행된 지 벌써 1년이 지나가고 있다.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준비로 정보제공·현장지원·홍보 등의 활동을 했으나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획기적인 산재예방 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산재예방을 위한 예산확보가 절실하다. 노사정이 합의한 산재예방 대책을 이행해야 한다. 정부 산재예방 일반회계 확대의 경우 총 세 차례에 합의가 있었지만 이행되지 않고 있다. 합의를 이행해 50명 미만 사업장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계의 로비와 정부의 관료 중심적 사고에 의해 후퇴해 제정됐다. 원안에서 삭제된 발주자·감리자 의무는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사고와 올해 1월 광주 화정동 아파트 붕괴사고 참사의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후퇴시킨 경영계와 정부에 무한한 책임이 있다. 한국노총은 후퇴한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을 되살리기 위한 경영책임자 정의, 5명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같은 보완입법 및 개정 활동을 적극 추진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성공하려면 산업안전보건법 준수해야
강태선 세명대 교수(보건안전공학)
 

▲ 강태선 세명대 교수(보건안전공학)▲ 강태선 세명대 교수(보건안전공학)

중대재해처벌법이 고속도로라면 산업안전보건법은 국도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즈음해 고용노동부는 무엇보다 산업안전보건법 집행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고속도로를 개통한다 해도, 국도를 개량하거나 그 신호체계를 효율화하지 않으면 목적지에 닿는 시간은 달라지지 않는다.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지키도록 하는 것은 근로감독에 달렸다. 산업안전보건 규제정책은 ‘전략적 기획’에 입각한 산업안전보건 감독이 요구된다. 지금까지 관련 규제정책에는 전략이 없었다. 당연히 적절한 평가도 부족하고 효율과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전문적인 규제정책을 장기적으로 구사하려면 산업안전보건청과 같은 외청 조직으로의 개편이 시급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을 통해 정비해야 할 사항이 많다. 검찰과 노동부가 이 법의 구체적인 내용에만 집착하지 말고, 법 조문의 ‘안전보건관리 체계’에 투영된 산업안전의 일반원칙을 이해하는 등 전문성 향상을 꾀하길 바란다. 입건·기소 실적에만 급급하기보다 조사 등 사법처리 전반의 절차가 예방에 기여하는 방도를 고민해야 한다.

이 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경영책임자를 실형에 처하는 것이 아니라 중대재해를 예방하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리더의 관심과 노력을 촉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경영책임자들이 이제 산업안전을 중요한 가치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리더의 관심과 노력은 핵심적인 요소이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다. 리더를 중심으로 조직이 바뀌어야 한다. 큰 조직일수록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당해 중대재해 발생 기업 경영책임자의 입건·기소·실형과 같은 사법처리 지표에만 얽매이지 말고 향후 1년 동안 큰 틀에서 전반적인 경영책임자의 산업안전에 관한 태도와 행동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노동자들이 모니터링하기 바란다.

덧붙여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산재예방을 위해 가장 중핵적인 법률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산업안전보건법의 것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맡기는 게 산재예방을 위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중대산업재해’의 범위에 만성 직업병을 포괄하자는 주장은 옳지 못하다. 감춰진 만성 직업병을 드러내는 것이 산재예방에 당면한 과제인데, 이를 어렵게 할 수 있다.

 



책임전가 말고 각자의 역할·책임에 충실하자

▲ 임우택 한국경총 안전보건본부장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임박하면서 기업들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지고 있다. 여전히 현장에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 법을 지켜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이해가 어려우니 준비하기는 더 어렵다. 여기에 최근 발생한 건설사고 등의 여파로 사고 발생에 대한 업계 불안감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이 법이 처벌보다 산재 예방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불명확한 법률 규정과 해석의 모호성으로 인해 사고발생시 CEO가 구속·처벌될 수 있다는 엄청난 리스크에 노출된 상태다. 이미 목도하듯이 산재사고 소식이 보도되면 개별 사고의 원인분석보다는 원청이 책임지라는 요구와 더 가혹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비록 중대재해처벌법은 아직 시행되지 않았어도, 이미 사회적으로는 사고발생 기업에 대해 법보다 더한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

기업의 책임과 처벌을 얼마나 더 높여야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우리 모두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수년간 원청의 책임·처벌 강화 등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법률 제·개정이 이뤄졌음에도 기대만큼의 사고사망자 감소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은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과 같은 일방적 책임전가식 정책으로 인해 산재예방 효과는 그 한계가 명확하다.

단언컨대 근로자의 죽음을 원하는 기업은 없다. 기업 역시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산재예방을 원하고, 도움을 필요로 한다. 정부는 근로자뿐 아니라 사업장 역시 안전관리 수준 제고를 위해 도와야 할 대상으로 접근해 적극적인 지원활동을 추진해 주시기 바란다. 노동계 또한 우리의 일터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도록 사업주와 협력하며 높은 안전의식으로 사고예방에 힘을 더해 주기를 부탁드린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의 교훈을 항상 되새기며 노사정이 각각의 역할과 책임에 충실할 때에 우리 모두의 안전 또한 지켜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