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거래소


확정기여형 퇴직연금 부담금 미납금에 대한 소멸시효의 기산점(기간의 계산이 시작되는 시점)은 노동자의 ‘퇴직 시점’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미납금에 관한 소멸시효 기산점은 ‘부담금 납입일’이 아닌 퇴직할 때부터 발생한다는 취지다.

법조계는 소멸시효 기산점을 부담금 납입 시점으로 보면 미지급 연금 중 일부가 시효 완성으로 소멸하는 문제가 있는데, 법원이 이를 바로잡았다고 평가했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퇴직급여법) 10조에 따르면 퇴직금을 받을 권리는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한다.

한국거래소 직원 집단소송, 일부 승소
법원 “최종 퇴직시 지급청구권 발생”

서울남부지법 민사13부(재판장 홍기찬 부장판사)는 한국거래소 전·현직 직원 A씨 등 92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6일 밝혔다. 이 판결은 한국거래소가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A씨 등은 2015년 10월~2019년 11월 사이의 미지급 시간외근로수당 및 연차수당을 지급하라며 2019년 5월 소송을 냈다. 이들은 정기상여금·경로효친보조금·인센티브성과급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이를 기초로 통상임금을 다시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평균임금에 경영성과평과급을 반영하고, 확정기여형 퇴직연금 및 혼합형 퇴직연금에 가입한 직원들에게는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추가 금액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재판에서 ‘확정기여형 퇴직연금 부담금 미납금’에 대한 소멸시효 기산점이 핵심 쟁점으로 다퉈졌다. 사측은 소멸시효 기산점이 퇴직연금 부담금 납입일이므로 3년의 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미납금에 대해서만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퇴직할 당시’를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에 대한 소멸시효 기산점이라고 못 박았다. 재판부는 “퇴직금제도에 대해서는 근로자의 최종 퇴직시 퇴직금 지급청구권이 발생하고, 소멸시효도 최종 퇴직 시점부터 진행한다”고 밝혔다. 퇴직급여제도 중 하나인 확정기여형 퇴직연금만 퇴직연금 청구권의 기산점을 부담금 납입 시점이라고 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퇴직급여법 규정도 근거로 들었다. 퇴직급여법 20조5항에 따르면 사용자는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제도 가입자의 퇴직시 부담금을 미납한 경우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14일 이내에 부담금을 가입자의 계정에 납입해야 한다. 관련 규정을 볼 때, 소멸시효 기산점은 퇴직 시점이 맞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회사가 A씨 등에게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2010년도 미납금부터 소송을 낸 2019년도 퇴직연금 미납분과 이자까지 지급할 것을 주문했다.

대리인 “납입일로 보면 제도 취지 맞지 않아”

시간외근로수당·연차수당의 차액, 경영평가성과급도 평균임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임금에 해당한다고 봤다. 특히 경영평가성과급에 대해 재판부는 ‘경영실적평가 결과를 기초로 지급되는 공공기관의 경영평가성과급은 평균임금에 해당된다’고 판시한 2018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따랐다.

재판부는 △보수규정은 경영평가성과급 지급의무를 전제로 지급 대상·조건·기준을 정하고 있는 점 △매년 계속적·정기적으로 지급한 점 △공공기관 경영실적은 소속 근로자들의 근로에 의해 달성할 수 있는 점 △우발적·일시적 급여라고 볼 정도는 아닌 점 등을 토대로 평균임금이라고 판단했다.

직원들을 대리한 정명기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퇴직급여제도 취지에 부합하는 판결”이라며 “이를 계기로 퇴직연금 청구권의 기산점에 관한 불필요한 논쟁이 종식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