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노동부

공공부문 노동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노골화되고 있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체결한 단체협약 혹은 노조 규약이 관계 법령을 위반했다며 고용노동부가 단협 시정명령을 내리는 방식이다. 법 위반이 아니더라도 정부가 ‘불합리’하다고 판단하는 단협의 경우는 노·사에 개선을 권고할 계획이다. 권고에 따라 단협을 개선하면 정부 지침을 통해 해당 조직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다.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단체교섭권에 관한 협약(98호)이 발효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공무원과 교원 등 공공부문 노동자의 노동권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어 노동계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공공부문 479개 기관 중 37.4% 단협 법 위반?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1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부문 479개 기관의 단체협약을 살펴본 결과 179개 기관(37.4%)에서 관계법령을 위반해 불법 또는 무효로 판단되는 내용이 확인됐다”며 시정명령 계획을 밝혔다. 실태조사 대상은 올해 2~3월 기준 노동부에 단협을 신고한 기관으로 공무원단체 165곳, 교원단체 42곳, 공공기관 272곳이다.

노동부가 이날 밝힌 불법 단체협약 유형은 △법령 등에 반해 단체협약 효력을 우선 인정 △정책 결정 및 임용권 행사 등 교섭사항이 아닌 내용을 단협에 규정 △특정 노조만을 단체교섭 또는 단협을 체결하는 유일한 단체로 규정(유일교섭단체 조항) △사용자·노조의 단협 해지권 제한 등 6가지다.

정부 해석에 따르면 “조합원 복지 예산 편성시, 노조와 사전 합의” “구조조정·조직개편 등을 이유로 정원 축소 금지 및 노사합의로 정원 조정” “조합원에 대한 타 기관 인사교류시 노조와 합의, 노조 간부 인사 노조와 합의” “5월 중 1일 특별휴가 부여토록 단협에 규정” 등은 모두 불법이다. 단협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데 정부가 일방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개입하는 격이다.

사용자의 단협 해지통보를 기점으로 시작되는 노조활동 무력화 시도도 우려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단협해지 통보는 ‘노조탄압 최대 히트상품’이라고 불릴 정도로 현장에 큰 파급을 불러왔다. 노사 이견을 이유로 단협 유효기간이 끝난 뒤에도 단협을 체결하지 않으면 무단협 사업장이 되고 그 피해는 노조가 받기 때문이다.

박주영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는 “단협이 해지돼도 조합원들에게 적용되는 근로조건이 낮아지지는 않는다”며 “단협 해지의 핵심은 노조에 편의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통 단협 해지 후 노조사무실을 폐쇄하는 식으로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유일교섭단체 조항의 경우 2011년 7월 교섭창구단일화 제도 시행으로 사문화된 지 오래인데 이제야 실태를 점검, 불법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앞서 일부 노조의 ‘고용세습’ 조항을 겨냥 노조를 향한 부정적 이미지 덧씌우기 전략과 맥을 같이 한다.

노조활동 보장 단협 조항에 ‘불합리’ 꼬리표
인센티브 미끼로 개정 요구?

법 위반은 아니지만 ‘불합리한’ 단협의 개선을 권고하겠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노조 단결력을 강화하기 위한 내용이나,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로부터 노조 간부를 보호하기 위한 내용이 불합리한 단협에 포함됐다.

“노조 임원, 지부 간부의 노조활동과 관련한 인사 및 징계에 대하여 노조와 합의(공공기관)”와 “노조활동 방해 우려가 있는 경우 채용금지 및 노조의 채용거부 요구시 이를 수용, 노조 집행부 인사시 노조의 사전 동의(교원)” 등의 내용이 대상이다.

산별노조의 힘을 약화시키는 내용도 포함됐다. “비종사자 조합원도 제약 없이 관공서 내 노조 사무실 출입을 보장, 야간의 경우 통보만으로 출입 가능(공무원)”하도록 한 조항은 산별노조 간부의 출입 허용 근거가 된다.

지난해 말부터 노동부는 지부·지회의 집단탈퇴를 금지한 산별노조 규약이 노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노동위원회에 정부가 시정명령을 의결하는 등 산별노조 흔들기에 나섰는데, 그 연장선상으로 해석된다.

불합리한 지침 개정시 인센티브를 주는 것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관계부처에서 지침에 반영하는 것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공공기관의 경우 경영평가 등에 해당 내용을 반영하는 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재부는 지난해 12월 ‘2023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운용지침’을 확정하면서,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기관에는 총인건비를 인상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도 밝혀 논란이 일었다.

노정관계 더 얼어붙을 듯
ILO 기본협약 위반 논란 ‘증폭’

이번 조치로 노정관계는 더욱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양대 노총은 이날 정부 발표 직후 성명을 내고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비준한 ILO 핵심협약 마저 정면으로 위반하겠다는 선언으로 국제적 망신 자초하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을 규탄한다”며 “민주노총은 공공부문에서 시작된 단협 후퇴 시도에 조직적 힘을 모아 맞서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공공부문 단협 효력 우선 인정이 무조건 위법하다’는 정부 판단은 노동법 기본 원칙 무시한 판단”이라며 “정부는 노사관계 기본원리를 무시한 노조 때리기식 단협 시정명령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ILO 기본협약 위반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2015년 노동부 단협 시정 관련 행정지침에 대해 “교섭 당사자 간 자율에 맡겨 둬야 할 단협에 대한 시정명령을 자제(해야 한다)”며 “단협 관련 지침은 노사정협의의 결과물이어야 한다”라고 권고했다.

이석 변호사는 “고시나 지침을 통해 헌법상 노동 3권, 노동법률이 특별히 보호를 예상하는 단협에 대한 난도질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행정권 남용”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