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노동이사제의 정기국회 회기 내 도입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비롯한 여권인사들이 잇따라 약속했지만 정작 법안을 다루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여전히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연내 입법을 위해 여권이 정치력을 발휘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3시간 회의하고 5시간 쉰 법안소위
기재위 30일 정기국회 마지막 전체회의

국회 기재위 경제재정소위원회는 23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쳐 회의를 열고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담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을 비롯한 125개 법안을 심사했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친 회의 결과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포함한 71번부터 나머지 법안의 심사는 다음 차수 회의로 미룬 채 산회했다.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은 79번부터다.

25일 법안소위는 제대로 진행하지도 못했다. 국회회의록을 보면 이날 회의는 오전 10시36분에 개의했다. 이후 1시간23분 만인 오전 11시59분 정회했다. 통상 오후 2시 혹은 2시30분께 속개하는 게 관례지만 이날 회의는 오후 5시4분이 돼서야 다시 열렸다. 일부 의원들이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아 회의 자체가 지연했다는 후문이다. 그나마도 속개한 지 1시간22분 만인 오후 6시26분에 산회했다. 사실상 3시간 남짓한 회의를 진행했을 뿐이다. 이날 회의를 참관한 한 국회 관계자는 “오후 회의 개의시간에 의원들이 제대로 입장하지 않아 시간이 지연했다”며 “밤샘회의를 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이르게 산회했다”고 설명했다.

기재위는 30일 마지막 전체회의를 열기로 일정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정기국회는 다음달 9일 종료한다. 법안소위를 전체회의 직전 한 번 더 여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장담하기는 어렵다.

“문 정부 국정과제” 도입 자신했는데
재계 반대성명 발표하고 쟁점화 시도

상황은 정기국회 내 입법을 강조한 이재명 후보나 박완주 당 정책위의장 등 여권 핵심인사 발언과 비교하면 다소 민망한 결과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22일 한국노총을 찾은 자리에서 정기국회에서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강조했고, 박완주 정책위의장도 이튿날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라며 도입 의지를 드러냈다.

문제는 국민의힘이다. 재계가 반발하고 있어 핑곗거리는 충분하다. 한국경총은 지난 25일 4년제 대학 경제·경영학 교수 200명 중 61.5%가 민간기업 도입시 기업 경쟁력에 악영향을 준다며 반대했다고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 90%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이 민간기업에도 압박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경총은 또 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와 함께 같은날 노동이사제 입법 논의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현실적으로 남은 방법은 두 가지다. 12월 임시국회가 기점이 될 전망이다. 임시국회를 열면 12월 내 기재위 법안심사소위 일정을 잡아 논의하거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태울 수 있다. 실제 여권 한 관계자도 “임시국회에서 논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기국회 회기 내 입법은 물 건너가더라도 연내 입법 가능성은 열려 있다.

패스트트랙 지정도 가능하다. 이재명 후보는 한국노총과 만나 야당 반대가 지속되면 패스트트랙을 통해서라도 신속히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면 상임위 심사 180일,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90일을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다.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수가 압도적이라 본회의 표결까지 가면 가결 가능성이 높다. 다음 정부 일이다.

한편 국회에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법안 3건이 계류 중이다. 노동계와 정부는 지난해 11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공기관위원회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에 합의했다. 올해 2월 경사노위 본위원회를 통과했다. 당시 재계만 반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