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산업재해보상을 신청했다는 이유로 ‘보복행위’를 한 사업주가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111조의2 위반으로 사업주가 형사처벌을 받은 첫 사례다. 산재보험법 111조의2는 “사업주는 근로자가 보험급여를 신청한 것을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그 밖에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대우조선 용접공, 골절상으로 보험급여 신청
사업주, 잔업 통제하고 손실보고서 허위 작성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창원지법 통영지원 형사2단독부(윤준석 판사)는 지난 22일 증거위조교사·산재보험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대표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하청업체 생산부장은 벌금 400만원을, 탑재반 반장과 현장소장은 벌금 200만원을 각각 선고받았다.
하청업체 용접공인 B씨는 2019년 10월께 조선소에서 용접작업을 하던 중 골절상을 입어 산재를 신청하고 지난해 3월까지 요양했다. 그런데 A씨는 B씨가 산재를 신청했다는 이유로 현장소장에게 지시해 지난해 6월까지 잔업 및 특근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는 이 무렵 A씨에게 “B씨에 대한 잔업 및 특근 제한을 즉시 중단하지 않으면 형사고발하겠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자 A씨는 생산부장에게 잔업 및 특근 제한 이유와 관련해 ‘대량 품질불량 사고’인 것처럼 꾸며 품질문제손실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이후 A씨는 경찰 조사에서 “B씨가 용접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대량 품질불량 사고를 일으켰기 때문에 징계 차원에서 잔업 및 특근을 제한한 것”이라며 산재보험법 위반 혐의를 부인했다. 조작한 품질문제손실보고서를 함께 제출했다.
생산반장과 탑재반 반장 역시 품질불량과 관련한 작업 내역을 위조했다. 품질불량을 수정한 작업시간을 기존 44시간에서 79시간으로 변경했다. 검찰은 A씨가 생산부장에게 증거를 위조하도록 교사하고, 현장소장·생산부장·탑재반 반장은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위조했다고 보고 이들을 기소했다.
사업주는 집행유예, 공모자는 벌금형
“수사권 방해는 중범죄, 실형 선고돼야”
법원은 “보험급여를 신청한 것을 이유로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처우를 했다”며 이들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동종 전력이 없다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이번 판결로 산재신청 보복행위에 경종을 울릴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그동안 산재신청으로 인한 불이익은 사내 문제로 치부되고, 노동자들도 불법행위로 인식하지 못한 경우가 많이 있었다”며 “이번 판결이 산재를 신청했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은 다른 노동자의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집행유예 판결이 너무 가볍다는 의견도 있다.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산재신청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국가가 운영하는 산재보험제도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므로 범죄행위”라며 “이러한 범죄를 감추기 위해 증거를 위조한 것은 수사권 행사를 방해한 중범죄에 해당하므로 집행유예가 아닌 실형이 선고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편 산재보험법 위반과 관련한 정부의 수사 전문성도 강화될 전망이다. 국회는 지난 9일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사법경찰직무법) 개정안을 의결했는데, 그동안 경찰이 하던 산재보험법 위반사건 수사를 근로감독관에게 부여하는 내용이다. 내년 1월27일 시행되는 개정안은 근로감독관의 사법경찰 직무범위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규정된 ‘중대산업재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처벌’ ‘중대산업재해 양벌규정’과 산재보험법에 규정된 ‘불이익 처우 금지 위반’ 관련 범죄를 포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