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기간제 관리소장을 직접 관리·감독했다면 주택관리업체가 바뀌더라도 계속 고용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대표회의와 관리업체가 관리소장과 모두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 ‘공동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강우찬 부장판사)는 아파트 관리소장 A(62)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A씨의 청구를 기각한 중노위 판정을 뒤집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28일 밝혔다.
입주자·업체 모두 사용자로 근로계약 체결
노동위, 관리소장 사용자 두고 엇갈린 판정
A씨는 2013년 B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와 주택관리업체 C사를 모두 사용자로 표시할 것을 요구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매년 근로계약을 갱신해 근무해 왔다. C사는 2004년 12월부터 대표회의에서 아파트 관리업무를 수탁했다.
그런데 C사가 2019년 11월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며 입주자대표회의에 통보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갱신 거절로 인해 C사에 소속된 관리사무소 직원들도 그해 12월을 마지막으로 근로계약이 종료되기 때문이다.
C사가 A씨에게 근로계약 종료를 통보하자 A씨는 입주자대표회의에 ‘근로계약이 묵시적으로 갱신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입주자대표회의는 올해 1월 “직접고용관계가 없고, C사와의 근로계약도 기간만료로 종료됐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입주자대표회의는 1월20일 새 업체와 계약을 체결했다. A씨는 계속 출근했지만, 입주자대표회의는 새 업체가 관리를 맡자 관리소장실 출입문 잠금장치를 교체해 A씨의 출입을 금지했다.
A씨는 강원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지노위는 입주자대표회의만 사용자로 인정하고 C사에 대한 구제신청은 각하했다.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한 신청 역시 갱신기대권을 인정하지 않고 기각했다. 반면 중노위는 C사만 사용자라고 봤다. 그러면서 해고 부존재를 이유로 C사에 대한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A씨는 재심판정에 불복해 지난해 11월 소송을 냈다.
법원 “대표회의와 업체 모두 사용자”
대표회의는 ‘부당해고’ 업체는 ‘쌍방합의’
쟁점은 관리소장의 ‘사용자’를 누구로 볼 것인지였다. 법원은 입주자대표회의와 C사를 ‘공동사용자’라고 판단했다. A씨의 요구에 따라 대표회의와 C사 모두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내용의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 A씨 임금을 입주자대표회의가 지급하고, 근태관리와 휴가 등 복무사항도 입주자대표회의가 결재권을 행사한 부분도 작용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사용자라는 점을 전제로 재판부는 갱신거절이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C사의 갱신거절 통보는 합의된 내용으로 단지 C사가 공동사용자를 대표해 의사표시를 한 것”이라며 A씨에 대한 근로계약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고 해석했다. 근무태도 등 해고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됐다는 취지다. 실제 위·수탁계약서는 ‘C사와 A씨 사이의 근로계약과 관련한 모든 책임은 실질적 고용 주체인 입주자대표회의에 있다’고 정했다.
다만 C사와의 관계에서는 A씨가 근로계약 종료의사를 밝혔다는 점을 근거로 부당해고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가 B아파트에서의 근무만을 희망함으로써 이미 계약종료로 근무조건을 제공할 수 없는 C사와의 근로계약 종료의사를 밝혔다고 볼 수 있다”며 쌍방 합의에 따라 근로관계가 종료됐다고 봤다.
A씨를 대리한 지하림 변호사(법무법인 이평)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업체를 통해 경비원을 고용하더라도 급여나 근태관리는 직접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판결은 위탁업체가 아닌 입주자대표회의를 실사용자라고 해석한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