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전경.
대표이사의 배임·횡령 같은 부정행위를 의심하며 일부 팀장급 직원에게 이메일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임원을 해고한 것은 사용자의 재량권을 넘어선 부당해고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반도체부품 제조업체 A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A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1일 밝혔다. 회사가 소송을 낸 지 약 2년6개월 만이다.
대표와 갈등 끝에 9개 징계사유로 해고
중노위 “업무명령 불복·근무태만 징계사유 안 돼”
A사 임원인 B·C·D씨는 회사 설립 초기부터 각각 경영지원 및 재무총괄 상무, 영업총괄 상무, 소프트웨어 개발 이사로 재직했다. 이들은 회사 주식 3~19%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8년 6월께 이들이 팀장 일부에게 대표의 배임·횡령 등이 의심된다는 내용의 이메일과 SNS 메시지를 보내며 대표와 갈등이 빚어졌다. 대표는 “임원들이 과거 자신의 신규사업 투자실패 및 세무상 약점을 빌미로 과도한 경영참여와 실질적인 경영권 양도를 요구했다”며 인사위원회에 징계를 요구했다. 임원들로 인해 조직 내 분위기가 저하되고 인재가 유출됐다는 것이다.
회사는 인사위원회를 열었고, 재심 끝에 그해 8월23일 B씨 등 임원 3명을 해고했다. 회사는 △회사의 명예와 신용 손상 △직무정지 명령을 위반해 출근 △고의적 업무방해 △대표의 배임 의심 이메일 발송 및 피켓시위 △팀장 및 직원 선동 △업무와 무관한 집단행동 주도 △대표 상대 형사고소·임시주총 요구 사실 공개 및 경영혁신합의서 작성 강요·협박 등의 징계사유를 제시했다.
B씨 등은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경기지노위는 업무지시명령 불복을 제외한 나머지 징계사유는 인정된다며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중노위는 근무태만도 징계사유가 아니라며 초심을 뒤집고 부당해고로 판정했다. A사는 “B씨 등이 업무에 관한 정당한 지시에 복종하지 않거나 담당 업무를 소홀히 하는 등 추가적인 징계사유가 인정돼야 한다”며 2019년 4월 소송을 냈다.
법원 "근기법상 근로자 인정, 재량권 넘은 부당해고"
“회사 명예·신용 손상 위험은 제한적인 수준”
1심은 B씨 등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고 회사의 해고는 재량권의 한계를 넘어선 경우에 해당한다며 사측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B씨 등이 직급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담당한 업무 분야에서 최종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가지지 못했다”며 종속적인 관계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근기법상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회사의 징계사유와 관련해선 대표의 부정행위를 의심하는 이메일 발송 등으로 회사의 명예와 신용을 손상했다는 점을 제외한 나머지 징계사유는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임원들이 대표의 부정행위가 의심된다는 내용의 전자우편과 카카오톡 메시지를 발송한 상대방이 비교적 소수인 팀장급 이상의 직원들뿐이었다”며 이들의 행위로 회사의 명예와 신용이 손상될 위험은 제한적인 수준에 그친다고 판시했다.
또 “B씨 등은 회사 주식 중 30%에 가까운 지분을 가진 주주들로서 상당한 이해관계가 있다”며 “이들이 대표에게 회사 경영 과정에서 생긴 의문점에 대해 해명을 요구한 데에는 동기와 경위에 참작할 만한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측은 징계양정이 적정하다며 1심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항소심도 “임원들이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려는 의도로 대표의 경영권을 침탈하고자 시도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회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도 “임원들의 행위는 사회통념상 용인할 수 있는 범위 내”라며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