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화재노조는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 본사 앞에서 성실교섭 이행과 보험설계사 노조 인정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했다. 노조는 “삼성화재 대표이사는 노조와 임금교섭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정기훈 기자>
삼성전자가 최근 인사제도 개편안을 비판하는 노조의 사내메일 전송을 제한한 것으로 확인됐다. “허위사실을 유포해 회사의 명예를 훼손하는 비방 발언에 해당한다”며 전송을 막았는데 노조 활동을 지배·개입하는 부당노동행위라는 비판이 거세다. 지난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무노조 경영 폐기 선언을 했지만 삼성 안 자유로운 노조 활동은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
“인사제도 개편안 반강제적 동의 요구” 비판에
“근거 없는 불안감 조장, 허위사실 유포”
24일 공동교섭단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16일 인사제도 개편 계획에 관해 노조에 설명했다. 개편안에는 부서장과 팀장의 승진·성과급 지급비율 결정권한을 강화하고, 동료끼리 평가하도록 하는 동료평가제 관련 내용이 담겼다. 노조는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문제가 심화하고, 고과권자들의 권력 강화, (고과를 잘 받기 위한) 줄서기 폐해가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동교섭단은 최근 인사제도 개편안에 대한 노조의 우려를 알리는 성명서를 임직원에게 사내메일로 발송하려 했다. 메일은 삼성전자 사측에 의해 막혔다. 삼성전자가 “위 사실을 유포하며 회사의 명예를 훼손하는 비방 발언에 해당한다”며 메일전송을 차단하면서다. 노조가 보내려 한 메일 내용에는 “지난 시기 회사가 반강제적으로 인사제도를 개악했던 사례들이 비일비재했다. 2009년 리프레시 휴가를 폐지했을 때도 그랬고, 2014년 임금제도를 회사가 일방적으로 변경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는 내용이 담겼다. 삼성전자는 “회사는 당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적법한 절차에 의해 진행해 직원 과반수의 동의를 얻었으므로, 작성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이번 인사제도 개편안은 회사의 일방적 발표와 직원들에 대한 반강제적인 동의 요구가 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든다”는 노조 우려에 회사는 “‘반강제적인 동의 요구’와 같은 내용은 아무런 근거 없이 직원들에게 불안감을 조장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것”이라고 했다. “노조가 있는 회사는 임금과 연동된 평가·승격제도를 변경하려 할 때 상호 논의하고 해법을 찾는다”는 노조의 비판에 삼성전자는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있는 회사들의 경우 과반수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받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을 근거로 들어 내용 수정을 요구했다. 삼성전자에는 4개 노조가 있지만 모두 합해도 조합원이 5천여명으로 전체 직원의 절반을 넘지 못한다.
공동교섭단 “사전검열이나 다름없어” 비판
삼성전자는 메일내용 수정요청의 근거로 올해 공동교섭단과 체결한 단체협약 내용을 근거로 들었다. 단체협약 9조4호에는 “녹스메일(사내메일)을 활용한 대량메일 발송 방식의 사내 홍보활동도 사내 이메일 사용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회사에 따르면 관련 사내 규정에는 “회사나 타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게시물 및 이메일, 회사 또는 제3자의 지적재산권 등 권리를 침해하는 내용의 게시물 및 이메일은 삭제 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노조는 사전 검열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공동교섭단 관계자는 “단체협약서상 사내 인트라넷을 활용한 대량 메일 발송을 할 경우 (회사) 사용규정에 따라 담당자의 승인을 얻기로 했지만 (교섭 당시) 회사는 ‘승인’은 절차일 뿐 대량 메일을 보내는 것과 관련해 사전검열은 없다고 밝혔다”며 “그런데 자꾸 법률검토를 이유로 메일 전송시기를 놓치게 해, 직원들의 귀를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성덕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삼성전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일방적이다’ ‘반강제적이다’는 표현은 주관적 판단에 해당할 뿐 불명예가 될 만한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가 아니어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그럼에도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핑계로 이메일을 전송을 막았다면 조합활동에 대한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올해 6월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삼성디스플레이노조가 발송한 이메일 삭제 행위를 일부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공동교섭단에 따르면 사내메일에서 모두가 볼 수 있는 알림기능의 일종인 ‘나우톡’에 인사제도 개편안과 관련한 내용이 올라오자, 회사 인사팀 관계자가 작성자에게 글을 내리라고 연락하기도 했다. 공동교섭단은 올해 임금협약 체결을 위해 매주 화요일 회사와 교섭을 진행 중이다. 노조는 지난 16일 회사에서 인사제도 개편안과 관련한 설명을 들은 뒤 우려를 전달했다. 회사는 아직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그동안 노조 메일은 모두 문제 없이 발송됐으나, 이번 메일에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수정 요청을 한 것”이라며 “게시판(나우톡) 글 삭제요청은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동료평가 도입하고 평가자 권한 높여 … 절대평가? 등급은 그대로 유지
삼성전자가 인사제도 개편 계획이 알려진 뒤 노조는 잇따라 반대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삼성전자노조 공동교섭단은 24일 “삼성전자 4개 노조는 무한경쟁과 불공정한 문화를 강화하는 삼성전자 인사제도 개악안 도입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삼성디스플레이노조도 회사 인근에 “일방적인 인사제도 개편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라는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내걸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삼성전자 인사제도 개편안 내용을 종합하면 절대평가를 확대하고 동료평가제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삼성전자는 현재 임직원을 ‘EX(Excellent)-VG(Very good)-GD(Good)-NI(Need improvement)-UN(Unsatisfactory)’ 5개 등급으로 나눠 평가한다. EX등급은 10%, VG등급은 25% 등 등급별 전체 임직원 비율이 제한돼 있다. 알려진 개편안은 EX등급 비율을 유지하되, VG등급 비율 제한을 폐지하고 절대평가로 나머지 등급을 매기는 방식이다. 동료들 간 상호평가를 하도록 하는 동료평가 제도도 개편안에 담겼다.
절대평가를 도입하더라도 임금총액이 정해진 상태에서 등급이 나뉘는 터라 경쟁이 되레 심해질 것이라는 게 노조 우려다. 공동교섭단은 “이번 개악안은 전체 임금총액을 고정시키고, 부서장과 팀장 등 고과권자의 권력을 강화한다”며 “직원들 간 이미 과도한 경쟁과 감시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삼성디스플레이노조도 “예산이 정해진 상태에서 평가를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사실상 등급이 나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현재 상황에서 좋은 제도로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상위평가자와 하위평가자의 격차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교섭단이 노조에 접수된 내용이라고 밝힌 삼성전자 직원 의견을 보면 “그냥 인기투표가 될 것 같다” “서로를 견제하고 사원들 간의 정치가 더 심해지겠다”고 전했다.
[캡션] 삼성화재노조는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 본사 앞에서 성실교섭 이행과 보험설계사 노조 인정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했다. 노조는“삼성화재 대표이사는 노조와 임금교섭에 나서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