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만(63·사진) 전 한국노총 위원장이 돌아왔다. “나는 이제 용도 폐기된 사람”이라며 손사래를 치던 그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잡아 끌었다. 김 전 위원장이 지난 8월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 초대 이사장을 맡게 된 배경이다.
2014년 한국노총 위원장, 2017년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을 맡은 그는 사실 좋은 자리와는 인연이 그리 많지 않다.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을 맡은 경험을 토대로 총연맹 대외사업을 오랫동안 도맡았다. 노동절 마라톤 대회를 시작한 2006년부터 대회 사업비 모금은 언제나 그의 담당이었다. 전태일기념사업회(현 전태일재단) 이사로 시민·사회와 연대하고, 한국노총 김태환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서 특수고용직·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문제를 줄곧 제기해 왔다.
공제회 이사장을 맡은 후 첫 행보도 후원금 받기였다. 금융산업공익재단에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 자산형성상품 신설 사업을 제안해 기금을 마련했다. 공제회를 통해 노동자들이 서민금융진흥원이 운영하는 자산형성상품에 가입할 수 있게 했다.
김 이사장은 공제회 사업을 한국노총 차원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노동운동이 자기들만 지키는 이기주의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사업을 통해 조금이나마 국민에게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플랫폼 노동자·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려고 고민하는 이들이라는 모습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인터뷰는 지난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공제회 사무실에서 했다.
공제회 26일 정식 출범 “두 마리 토끼 잡겠다”
- 공제회 준비 상황은.
“한국노총은 올해 초 플랫폼노동공제회 추진단을 위원장 직할로 구성했다. 8월25일 발기인대회에서 이사장으로 선임됐으니, 공제회 사업과 운영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지고 난 이후 참여하게 된 셈이다. 지난 15일 고용노동부에서 비영리재단법인 설립허가가 나왔고 현재 법인등기작업을 하고 있다. 사무실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 3층에 마련해 일할 채비를 하고 있다. 26일 출범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한다.”
- 공제회 활동으로 어떤 효과가 나타나리라 기대하나.
“크게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구상됐다.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서 점차 늘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프리랜서 등 비정형 노동자를 위한 다층적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정부와 국회가 플랫폼 노동자를 비롯한 취약노동자 보호를 강화하는 입법적·정책적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제도화와 산업 현장에서의 적용이 이뤄지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차가 존재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공제회가 제도적 공백을 보완할 장치가 될 수 있다. 사회보험 적용이 확대된다 해도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는 정규직이 기업에서 받는 복지혜택 수준을 기대할 수 없다. 공제회를 통한 상호부조를 통해서 최소한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제회 설립을 추진한 또 다른 이유는 공제회 대상인 노동자계층이 직업과 노동의 특성상 기존 노동조합의 형태와 경로로 조직화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물론 조직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뿔뿔이 흩어져 일하는 노동자들은 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비해 매우 어렵다.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계기와 자원이 필요하다. 공제회가 그 역할을 할 것이다.”
-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도 있어 보인다
“사회적 보호를 강화하는 제도와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공제회 같은 활동이 필요하다. 사회복지 수준을 높이는 데에는 제도 적용범위와 수준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복지의 혜택을 받는 당사자들 스스로 주체로 나서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사회제도와 정부 정책이 현장에서 실제 적용되도록 감시하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공제회를 통해 사회적으로 취약하고 제도적 권리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이 경제적 이해를 실현하고, 조직화의 계기와 자원을 마련해 스스로의 이해대변 역량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간접고용 무차별 확대 보고만 있을 건가”
- 과거 일부 직종에서 공제회가 설립됐지만 흐지부지돼 성공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
“어떤 조직이든 지향과 가치를 분명히 하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주체들이 튼튼하게 형성돼 있어야 발전의 길이 열린다. 또한 새로운 단계에서 기존 조직으로 해소되지 않는 문제에 부딪힐 때, 가장 적합한 형태로 전환·분화하지 못할 때 그 조직은 쇠퇴한다. 공제회는 한국노총 입장에서 보면 디지털 전환과 함께 간접고용이 무차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노동시장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자 도전이라 볼 수 있다. 기존의 조직화 경로와 방식만을 고집하는 것은 나태하다. 이전의 공제회 시도들의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공제회 자체의 한계 때문이라고 평가할 수만은 없다.”
- 공제회의 최종 목적은 노조 전환인가.
“질문의 전제가 잘못됐다. 노조가 공제회의 근본 목표가 아니며, 공제회는 조직 노동자들이 시혜적으로 만든 지원조직도 아니다. 공제회 자체가 노동자들의 자조조직이고 노동운동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그것이 노동조합운동의 필요성과 역할을 부정하거나 평가절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노동력을 기반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의 운동법칙이 작동하는 한 노조는 여전히 노동자들이 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다만 노동자들의 이해가 노동조합의 교섭과 투쟁만으로 실현되지 못하는 생활 세계의 다양한 지점들에서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 욕구를 인정해야 한다. 특히 기업단위 교섭 위주의 한국 노동시장구조에서 교섭 대상자를 찾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노조 가입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공제회는 가장 기초적 층위에서 노동자들 이해가 결집할 수 있는 조직이다. 그렇지만 공제회를 노조 조직화의 전 단계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노조 조직화를 목표로 한 공제회 회원 확대는 현실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노동자로서 정체성 자각하는 계기 될 것”
-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법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공제회는 이들을 노동자가 아닌 특수 직군으로 인정하는 것 아닌가.
“플랫폼종사자·특수고용직·프리랜서로 불리는 많은 이들의 실제 노동을 들여다보면 경제적으로 종속돼 ‘근로자’와 다름없이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해 돈을 번다. 이들에겐 노동법을 통한 보호가 원칙이며 기존 노동법상 ‘근로자’의 범위를 시대에 맞게 확대하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한국노총의 조직적 입장이다. 하지만 근본적 해법이 마련되기 전까지 당장 할 수 있는 보호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배부른 소리가 아닐까 싶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를 위한 것이고, 공제회는 ‘비노동자’를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실제 있다. 최근 확산하고 있는 노동공제회운동을 노조가 주도하는 사례들이 많다는 현실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내놓는 주장이라 본다. 오히려 공제회는 스스로 ‘노동자’의 정체성을 갖지 못하는 소위 ‘노동종사자’들이 직업별로 모이며 ‘노동자’라는 인식을 하게 하는 계기를 갖게 할 것이다.”
-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경제적 지원만으로 공제회가 확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전문직종의 정책성 공제회들과 달리 노동자공제회는 기본적으로 자조조직이며 회원들의 주체성과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운영해야 한다. 물론 회원을 가입시키고 교육하기 위해서도 우선 초기의 경제적 이해를 최소한 충족할 계기들은 필요하다. 금융산업공익재단의 지원사업으로 자산형성지원사업을 계획하고 있고 일정 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1년 내 1만명의 회원을 조직하는 것이 출범 단계의 목표지만 부족하다. 업무수행에 필요한 보험이나 장비의 구입·관리와 관련한 지원 등 직종별 특성에 맞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보다 기업들이 알려주지 않는 직업활동의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고 일의 보람과 자긍을 가질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더 중요하다. 공제회는 직종별로 일과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고 직무능력을 스스로 향상하는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노동자이자 직업인으로서 의식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
- 공제회 성공을 위해 재원 문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원칙적으로 공제회는 당사자들이 갹출한 회비와 상호부조로 운영된다. 하지만 실제로 혜택이 피부에 와닿으려면 ‘규모의 경제’와 공제회의 ‘신뢰도’ 확보가 필요하다. 초기에는 사회적 자원의 유입이 절실하다. 사회적 금융기관이나 공익재단들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사업들에 대한 수탁이나 지원요청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공제회가 지속가능한 경제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이나 공공기관들에도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사회공헌기금 후원을 요청하고자 한다. 초대 이사장에 임명한 것은 기부라도 많이 받아 내라는 의미로 알고 있다.(웃음)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지원들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공제회가 결국 사업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일에 먼저 성공해야 한다. 한정된 재원과 인원으로 이 모든 사업의 기반을 마련해야 해서 어깨가 무겁다. 많은 도움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