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이 중앙부처에서도 통하지 않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1단계 정규직 전환 대상인 용역노동자를 3단계 대상인 민간위탁 노동자라며 배제한 중소벤처기업부 얘기다. 콜센터를 민간위탁했다고 주장한 중기부는 위탁기관 채용인력과 자산까지 관리하고 근무배치 등 노동조건에도 개입한 정황이 확인됐다.

대부분 중기부 산하기관도 갖가지 이유를 대며 콜센터 용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았다. 한 기관은 특정 콜센터업무는 용역으로 보고 또 다른 콜 센터업무는 민간위탁으로 보는 식으로 오락가락했다. 3단계 정규직 전환 여부를 기관 판단에 맡기며 세부 지침을 제시하지 않은 문제가 현장의 혼란과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기부 입찰공고 보면 용역인데
민간위탁으로 분류하고 ‘현행 유지’

5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중기부와 7곳 산하기관에서 받은 콜센터 노동자 정규직 전환 관련 자료를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해 살펴봤다. 자료에 따르면 중기부는 ‘1357중소기업통합콜센터’를 민간위탁 사무로 분류하고 간접고용 형태로 유지했다. 중기부는 2019년 10월 전문가로 구성된 민간위탁 심층논의 필요사무 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6차례 회의를 거쳐 업무 효율성·예산 등을 고려해 올해 3월 이같이 결정했다. 1357콜센터는 2014년 중소기업청 산하기관 콜센터가 단일번호로 통합된 것으로 현재 업체 소속 80여명의 상담사가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에 대한 정보제공과 상담안내 업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중기부 결정은 정부 가이드라인과 배치된다. 중기부가 2019년 11월 조달청 나라장터에 입찰공고 서류로 낸 ‘1357콜센터 위탁운영 제안요청서’를 보면 전체 71명 중 매니저 1명, 팀장 5명, 강사 3명, 상담사 62명으로 세세히 적혀 있고 직접인건비도 직무별로 얼마인지 나와 있다. 정부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인건비·채용인원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는지 여부에 따라 용역과 민간위탁이 구분된다. 가이드라인은 용역을 ‘용역계약시 공공기관에서 인건비를 구체적으로 산정하고 채용해야 할 근로자수 등을 정하는 경우’로, 민간위탁을 ‘인건비·채용인원 등을 구체적으로 산정하지 않고 시설 전체나 특정업무를 포괄적으로 위탁하는 경우’로 규정했다. 중기부가 상담인력 숫자와 인건비를 구체적으로 적시한 만큼 가이드라인대로라면 용역으로 분류됐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운영현황에는 고정자산 목록이 첨부돼 있는데 PC·책상·전화기 등 수량과 취득일자까지 명시돼 있다. 계약특수조건을 보면 운영기관(수탁업체)이 ‘용역계약’ 체결 후 1357콜센터 운영 계획서를 작성해 중기부에 제출해야 하고, 평일근무를 원칙으로 하되 구체적 팀원배치는 중기부와 협의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중기부가 인력부터 자산까지 세세히 관리하고 업체 소속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개입하는 등 노무도급 성격이 짙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데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TF는 지난 7월 중기부가 ‘1357중소기업통합콜센터’ 사무를 민간에 위탁운영하는 현행 방식을 유지하기로 한 기관 결정을 받아들였다. 중기부 산하기관인 기술보증기금이 3년 전 내린 결정과 비교해 보면 중기부의 판단을 이해하기 더 어려워진다. 기술보증기금은 2018년 11월 노·사·전문가 협의기구를 통해 23명의 고객센터 노동자를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기술보증기금은 류호정 의원실에 용역으로 판단한 이유를 “제안요청서·도급위탁계약서 등에 인건비 및 채용근로자수가 구체적으로 명시된 계약으로 정부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대로 용역계약으로 분류했다”고 답했다. 같은 가이드라인을 두고 중기부 산하기관 한 곳은 용역으로 분류한 뒤 정규직 전환까지 마친 반면 중기부는 용역이 아닌 민간위탁으로 분류한 뒤 현행 방식을 유지하겠다고 한 셈이다.

중진공 콜센터 3년 전엔 ‘용역’ 지금은 ‘민간위탁’
중소기업유통센터, 용역이라더니 ‘사업 폐지 우려’로 미전환

 

중기부 산하기관 내에서도 가이드라인 적용 방식이 제각각이었다. 류호정 의원실과 <매일노동뉴스>는 중기부 산하 공공기관 7곳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도 들여다봤다. 기술보증기금 등 2곳이 콜센터 업무를 용역으로 분류했고, 나머지 5곳은 민간위탁으로 분류했다.

5곳 중 한 곳인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네 가지 콜센터 사무(수출바우처 민원안내센터·내일채움 고객센터·정책자금 안내 콜센터·원스톱 취업지원을 위한 사후관리센터)에 대해 지난 8월26일 1차 민간위탁 타당성 검토위원회를 열고 현행방식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중진공은 불과 3년 전 유사한 상황에서 정반대 결론을 내린 바 있다. 2018년 자회사인 중진공파트너스㈜를 설립한 후 용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이다. 연체관리집중센터에서 미납안내와 만족도 조사를 한 상담사 9명도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됐다. 중진공은 류호정 의원실에 연체관리집중센터를 용역으로 판단한 이유에 대해 “채용해야 할 근로자수를 지정, 세부적인 과업지시 등의 사유”라고 답했다. 하지만 다른 4개 사무의 용역 제안요청서를 확인해 보면 인력과 과업범위가 명시돼 있다. 기관의 자의적 구분에 따라 용역·민간위탁 분류와 이에 따른 정규직 전환 여부가 달라진 셈이다.

중진공 인재경영실은 지난 8월 ‘민간위탁관리위원회 구성 및 운영계획(안)’에서 “정규직 전환 이후 계약한 4개 외부 콜센터를 국가계약법상 ‘용역’으로 인지하고 민간위탁 관리는 미실시”했다고 적시하기도 했다.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민간위탁 타당성 검토를 실시하지 않은 이유를 ‘용역’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 것이다. 용역으로 판단했다면 노·사·전 협의체 구성을 해야 하는데 관련 절차를 밟지 않은 데다 이제 와서 민간위탁으로 분류한 뒤 타당성 검토 결과 현행 유지 결정을 내린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은 설명이다.

용역으로 분류한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세 차례 노·사·전 협의체 회의 이후 지난달 AS콜센터가 정규직 전환 ‘예외사유’에 해당한다며 현행 방식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예외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근거는 향후 사업의 지속성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과 민간에서 운영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점 두 가지다.

그런데 해당 업무는 2011년부터 위탁운영으로 10년 넘게 지속된 업무다. 2012년 40여명에서 이듬해 200여명으로 상담인원이 늘어났고 현재 100여명의 상담사가 근무하고 있다. 중소기업유통센터는 류 의원실에 “고객센터 운영방식은 장소 및 시설 등은 유통센터에서 제공하고 민간업체는 근로자를 채용하고 관리하는 구조”라고 답변했다. 이는 노무도급 형태로 운영된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류호정 의원은 “중기부가 1단계 용역계약을 3단계 민간위탁으로 잘못 판단했다”며 “잘못을 인정하고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노·사·전 협의체를 구성해 정규직 전환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기부뿐만 아니라 산하기관도 대부분 노무도급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기훈 기자

“민간위탁 정규직 전환 추진 의사 없었던 것”

전문가들은 세부 지침 없이 민간위탁기관이 정규직 전환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라고 한 데서 이러한 문제가 파생됐다고 봤다. 용역·민간위탁 구분은 무 자르듯 나눠지지 않는데 각 기관이 알아서 판단하도록 책임을 넘기면서 현장의 갈등을 사실상 방기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용역이라고 해도 인원과 단가를 정해 두고 운영하지 않거나 반대의 경우도 많기 때문에 개념적 구분이 현실에 딱 맞아 떨어지게 적용되지 않는다”며 “방침과 기준을 세우지 않은 채 기관 자율에 맡겨서 진행하다 보니 민간위탁 정규직 전환 비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9년 2월 민간위탁 정책추진방향을 발표하면서 오분류 여부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사업장 노조와 기관에서 조정신청을 받은 결과 122건이 접수됐는데 노동부가 오분류로 판단해 1단계 정규직 전환절차를 밟도록 한 것은 4건에 불과하다.

콜센터, 전산유지·보수,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수도 및 댐 점검정비 등은 ‘심층논의가 필요한 사무’로 분류했는데 기관이 직접 수행할지, 민간위탁을 유지할지 자율적으로 결정하라고 또다시 떠넘겼다. 10여명의 내·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기구를 만들어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한 뒤 공공부문 비정규직TF에 보고하라는 단서만 붙였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기관의 자율판단에 맡긴다는 게 기본 원칙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추진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법적으로 개념은 다르지만 실질적으로 구분이 어려운 데다 가이드라인 기준이 애매하게 돼 있기 때문에 과도하게 민간위탁으로 넘어간 측면이 있고 정규직 전환 절차조차 밟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