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주 52시간 상한제를 허무는 ‘연장근로 총량관리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도와도 병행이 가능하다. 이럴 경우 주 64시간을 일해도 연장근로수당이 발생하지 않는다. ‘초장시간 압축노동’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정부는 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확정하고 근기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회의 직후 열린 기자브리핑에서 “현재 근로시간 제도가 근로자와 기업의 선택권을 제약하고 글로벌 스탠다드와도 맞지 않다”며 “이번 정부 입법안은 경제규모 10위권인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게 근로시간에 대한 노사의 ‘시간주권’을 돌려주는 역사적인 진일보”라고 평가했다.
주 69시간과 주 64시간 사이 선택권 보장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기업이 바쁠 때 언제든지 일을 시킬 수 있는 ‘초장시간 압축노동’ 허용에 가깝다. 연장근로 총량관리 제도의 핵심은 주 52시간 한도 체제에서 1주 12시간으로 정해진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노사합의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해 총량을 분배해 쓸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기업에 일이 몰릴 때 연장근로시간을 당겨 사용할 수 있도록 ‘주 12시간’이라는 한도를 없애는 것이다. ‘한도’ 없는 장시간 노동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 부여 또는 1주 64시간 상한 준수 △4주 평균 64시간 이내 근로 준수 △관리단위가 길어질수록(분기 이상) 연장근로 총량을 비례 감축하는 방안을 함께 제시했다. 단위별 연장근로 총량은 90%(분기), 80%(반기), 70%(1년)로 관리단위로 비례 감축해 △1개월 52시간 △분기 140시간 △반기 250시간 △1년 440시간을 쓸 수 있다.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과 법정근로시간 4시간당 30분의 휴게시간을 고려하면 하루 24시간 중 11.5시간 일할 수 있는데 주휴일 1일을 제외한 1주(6일) 동안 ‘69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29시간)’ 일을 시킬 수 있다. 주 52시간 상한제를 도입한 2018년 7월 이전 행정해석으로 ‘주 68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했던 시대로 회귀하는 셈이다.
정부는 선택근로시간제 정산기간도 확대했다. 지금은 정산기간이 전 업종 1개월, 연구개발 업무 3개월로 제한돼 있는데 법을 바꿔 전 업종 3개월, 연구개발 업무 6개월로 확대한다. 1일 근로시간은 한도가 없기 때문에 6개월 평균 주 40시간만 되면 연장근로수당 없이 노동시간을 늘리고 줄일 수 있다.
선택근로시간제 최대 6개월로 확대
가산수당 없는 ‘주 64시간’도 합법
입법예고안을 보면 탄력근무제와 연장근로 총량관리제를 함께 쓸 수 있다. 탄력근로제는 경영상 사정으로 법정 근로시간을 주 평균으로 운영하는 방식인데, 현행은 3~6개월 이내 주평균 근로시간이 40시간만 넘지 않으면 가산수당이 발생하지 않는다. 연장근로 총량관리와 병행하면 무한대로 근로시간이 늘어날 수 있다. 정부는 “탄력근로제와 연장근로 총량관리제를 병행할 경우 특정 주 근로시간이 과도해질 수 있다”며 주 64시간 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연장근로 가산수당 없이 주 64시간 일을 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근로시간제도의 뼈대를 흔드는 제도를 입법예고 하면서 정부는 노사의 의견도 듣지 않았다. 이 장관은 “노사 입장이 다를 수 있는데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가 문제 된다”며 “국민 여론이 충분히 공감하리라고 보고 입법예고 기간 40일 동안 노사 의견은 내용별로 수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입법예고로 노사 의견수렴을 갈음한다는 얘기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 1천928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천617시간보다 311시간이 길다. 1년에 39일을 더 일한다. 이정식 장관이 강조한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노총은 “정부안대로 연단위 연장노동 총량관리 하면 4개월 연속 주 64시간을 일 시키는 것도 가능해진다”며 “주 64시간 상한제가 현장에 자리잡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5일 연속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12시까지 일을 시켜도 합법이 되는 근로시간 제도개편”이라며 “정부 주장대로 노동시간 선택권을 보장하려면 사용자와 대등하게 교섭할 수 있도록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