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침과 가이드라인을 통해 공공부문 노사관계를 좌지우지하는 기획재정부 행정이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23일 한국노총 공공부문노조협의회(공공노련·공공연맹·금융노조)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은 한공노협이 2021년 12월28일 기재부를 상대로 제기한 2021년도 경영평가편람 수정처분 취소 행정소송에 대해 지난 21일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을 제기한 요건에 흠결이 있어 본안심리를 거부하는 판결을 말한다. 소를 제기한 당사자가 상대방 피고를 잘못 지정했거나, 승소하더라도 소를 제기한 사람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없는 경우, 소 제기에 관련된 규정을 지키지 않은 채 소송을 한 경우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기재부는 2021년 10월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전년도 12월에 확정했던 ‘2021년 공공기관 경영평가편람’을 고쳤다. 공공기관 복지제도 가운데 하나인 사내대출제도의 금리를 올리고, 이행하지 않으면 경영평가에서 감점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한공노협은 사내대출제도는 단체교섭으로 정한 제도인데, 기재부가 경영평가에서 감점하는 방식을 활용하면서 노사 교섭에 개입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한공노협이 행정소송을 낸 판단 뒤에는 공공기관에 대한 정부 지침이 행정처분에 해당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공공기관의 예산과 인력, 임금인상 폭까지 결정하는 기재부의 준정부기관·공기업 예산운용지침과 경영평가편람을 ‘공권력 행사’로 봐야 한다는 인식이다. 이런 주장이 재판부에서 받아들여지면 법률이나 시행령 개정 없이 가이드라인·지침으로 행정사무를 처리하는 부처 관행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기재부는 재판부에 낸 서면답변 등을 통해 지침과 경영평가는 행정기관 내부의 관리·감독 작용에 해당하는 것이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권력 작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영평가편람 수정은 행정처분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한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재판부의 각하결정은 기재부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경영평가편람을 통한 기재부의 공공부문 노사관계 개입이 적절한 것인지 여부는 따져보지도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한공노협은 판결문이 나오면 각하 이유를 파악해 후속 대응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항소를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류형석 공공연맹 정책실장은 “재판부는 경영평가편람은 행정처분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각하한 것 같다”며 “지침과 가이드라인으로 공공기관 단체교섭을 형해화하는 문제를 조금 더 신중하게 들여다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