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노동자 1천명 이상 유노조 사업장을 대상으로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제도 운영실태를 조사한다. 노동부는 실태조사의 목적을 ‘투명한 노사관계와 건전한 노조활동을 보장’이라고 밝혔지만 노조 회계장부 제출 요구에 이어 제2의 노조 때리기 수단이 될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노조 빼고, 사업주에게만 물어
시작도 전에 신뢰 균열
노동부는 31일부터 4주 동안 대규모 사업체 중 유노조 사업장 510곳을 대상으로 근로시간면제제도 및 전임자 운영 현황, 노조운영비 지원 현황 등을 조사한다고 30일 밝혔다.
노동부는 “노조활동에 지배·개입하거나 노조 간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둘러싼 갈등 사례가 지속됨에 따라 현행 제도의 운영실태를 면밀히 파악해 투명한 노사관계와 건전한 노조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석연찮은 대목이 있다. 지난해 근로시간면제 관련 부당노동행위 신고 사건은 15건으로 2021년 51건 대비 크게 줄었다. 지방노동위원회에 근로시간면제 배분과 관련한 차별시정 접수건은 지난 4년간 평균 55건으로 큰 폭의 변화는 없다.
2010년 근로시간면제제도 시행 후 진행된 세 차례의 조사와도 결이 다르다. 앞선 조사는 새 제도 시행 후 현장 안착의 어려움·보완 상황 확인을 목적으로 했다. 또는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결정하는 데 앞서 기업규모별 표본을 추출해 실태를 파악했다. 그런데 이번 조사는 노동자 1천명 이상의 유노조 사업장 501곳만 특정하고 있다. 노조는 빼고 사업주에게 면제자의 급여 수준, 각종 수당 지급 여부, 운영비 지원 현황 등을 묻는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은 “기존 실태조사는 노사협의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을 상대가 어떻게 썼는지 다 알 수가 없으니, 노사 모두에게 조사한 다음에 이견이 크면 (실태조사에서) 배제하도록 했다”며 “그렇게 해도 조사에 한계가 많은데 사측 일방만 조사해 문제를 삼겠다는 것은 의도가 뻔하다”고 비판했다.
대기업·유노조 사업장의 노조전임자 문제를 ‘특혜’로 몰고 갈 가능성도 있다. 윤석열 정부가 대기업·유노조 사업장의 연공성을 임금격차 원인으로 지목하며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인 양 지적하는 맥락과 유사하다.
노동부는 이번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현장점검 등 후속조치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노조활동 옥죄기 2라운드”
“노조전임자 활동 위축시킬 것”
전문가들도 노동부 계획에 우려를 표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이사장은 “노동부가 정기적으로 조사하는 노동조합 현황이나 단협 분석과 달리 1천명 이상의 대기업 사업장의 근로시간면제제도를 지금 시기에 조사한다는 것은 일정한 목적이 엿보인다”며 “현 정부의 국정과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양대 노총 전임자 활동 현황을 파악해 여론에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김 이사장은 “노조활동 옥죄기 수단으로 조합비 회계문제가 노정관계의 갈등의 1라운드였다면, 전임자 활동을 둘러싼 타임오프는 2라운드 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정부가 비준한 ILO 기본협약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는 “노조전임자 임금은 노사합의로 노조활동을 회사활동의 일환으로 보고 주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ILO의 결사의자유 협약(87호) 위반”이라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결정해 간접적으로 통제한다는 것도 부당한데 조사를 하는 것은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제한하고 옥죄는 것이기 때문에 ILO 단체교섭권에 관한 협약(98호)의 위반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ILO 노동자대표 보호협약(135호)은 근로자대표 보호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노조활동이나 노동자단체 활동에 대해 편의를 제공하라고 한다”며 “(정부의 실태조사는) 이런 노조전임자 활동을 위축시키고 축소시키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정엽 본부장은 “노조 때리기식으로 회계자료를 내라고 하고, 단협 실태조사를 해서 시정지시를 내리더니 타임오프 실태조사를 하겠다는 것은 꼬투리 잡아 노조활동에 시비를 걸고자 하는 것”이라며 “현장의 노사활동은 남용되지 않는 이상 노사자율, 자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