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정년이 지나 ‘촉탁직’으로 재고용 관행이 있었다면 별도 규정이 없더라도 ‘재고용 기대권’이 인정된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하급심에서 버스·기사 등의 재고용 기대권이 인정된 사례는 있었지만, 판결이 엇갈려 혼란이 일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에 따라 ‘재고용 기대권’ 법리가 정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재고용 기대권 ‘사용자 권한’아닌 ‘관행’으로 성립
6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경북 포항시의 경비업체 ㈜포센 노동자 A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지난 1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정년 후 촉탁직 재고용’과 관련해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기존 2008년 대법원 판례는 정년 이후 고용 유지 여부는 원칙적으로 사용자의 권한에 속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재고용 관행’이 확립됐다고 인정되는 등 당사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기간제로 재고용될 수 있다고 봤다. 재고용에 대한 신뢰관계가 형성됐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년 후 재고용 기대권을 가진다는 법리를 제시한 것이다.
‘재고용 관행’ 세부 기준도 마련했다. 먼저 근로계약·취업규칙·단체협약 등에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기간제 근로자로 재고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으면 기대권이 있다고 판단했다. 만약 규정이 없더라도 △재고용 실시 경위와 실시 기간 △해당 직종에서 정년 이후 재고용 비율 △재고용이 거절된 근로자가 있을 때 그 사유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예외 없이 기간제 재고용, 대법원 “신뢰관계 형성”
이번 사건에서도 이 같은 법리가 적용됐다. A씨는 포스코에서 1983년부터 경비업무를 하다가 2005년 5월 포스코의 분사 정책으로 설립된 시설경비 업체인 포센에 전직했다. 이후 제철소 초소에서 근무하던 중 포스코 하도급업체 직원들이 고철을 무단 반출하는 사고가 발생해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2013년 8월 징계면직됐다.
그러자 A씨는 해고가 무효이므로 해고가 아니었다면 정년 후에도 계속 고용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취지로 2015년 3월 소송을 냈다. 회사는 2012년 9월부터 만 57세의 정년이 지나더라도 정년퇴직자에게 한 달간 휴식을 준 뒤 다시 기간제 근로자로 재고용해 만 60세까지 근무할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해 왔다. 이에 A씨는 만 60세가 되는 2017년 2월까지의 임금 지급을 요구했다.
1·2심은 정년퇴직일 무렵 A씨에게 재채용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기존에 시행한 ‘재고용 제도’를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2014년 5월 이후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재고용 평가를 받았더라도 재고용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회사에 만 60세까지의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역시 재고용 관행이 형성됐다며 원심을 수긍했다. 대법원은 “취업규칙과 근로계약·단체협약에 (재고용 제도) 규정이 존재했다고 볼만한 자료는 없다”면서도 “상당한 기간 정년퇴직자가 재고용을 원하는 경우 예외 없이 기간제 근로자로 재고용된 점을 보면 기간제 근로자로 재고용될 수 있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법조계는 축적된 촉탁직 재고용 기대권 판례가 정리되는 추세라고 평가했다. A씨를 대리한 고윤덕 변호사(법무법인 시민)는 “재고용 의무 규정이 없더라도 재고용 관행이 확립돼 있는 경우 명시적으로 재고용 기대권을 인정한 첫 판례”라며 “이번 판결로 고령자의 고용안정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