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명 위원장을 비롯한 한국노총 산별연맹 대표자들이 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전면 중단과 윤석열 정권 심판 투쟁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면 불참을 결정한 한국노총이 “끈질기게 윤석열 정권 심판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여당에서는 한국노총을 배제하고 노동시간 유연화 등 노동정책을 밀어붙이겠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국노총과 정부 간 접점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보지 못한 최악의 노정관계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노총 ‘윤석열 국정 기조 반대’ 저항군 선언
한국노총은 8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사노위 참여 전면 중단을 시작으로 윤석열 정권의 폭압에 맞선 전면 투쟁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의 대정부 투쟁 선언은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 폭력 연행과 김준영 연맹 사무처장 유혈진압 사건이 방아쇠가 되긴 했지만 배경의 전부는 아니다. 김동명 위원장은 “정권은 하청노동자 고용승계나 원청과 직접교섭과 같은 제도개선에 반대하고 있고, 금속노련은 정부가 눈감고 있는 (포스코) 하청노동자 노동조건을 위해 싸웠다”며 “누적된 윤석열 정권의 노동탄압과 반노동 정책 때문에 폭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노총은 금속노련 간부 연행 사태 이후 윤석열 정권 심판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요약하면 “노동·시민·사회·정치권과 연대해서, 장기간, 윤석열 정권의 반노동·반민주·반민생 모든 정책에 대해 저항한다”는 한 문장으로 설명된다. 김 위원장은 “그간 노동문제에 국한해 주로 목소리를 내왔는데 앞으로는 언론 탄압, 민주주의 후퇴, 외교 문제, 복지 후퇴 등 국정 전반에 대해 전면적인 비판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권 임기 내내 저항군으로 나서겠다는 얘기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노동계를 탄압하는 까닭을 세 가지 이유에서 찾고 있다. 노조에 대한 사회 여론이 비판적이고, 양대 노총이 갈라져서 반목하면서 힘이 결집하지 않고, 정권에 우호적인 한국노총 내 일부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준비하는 윤석열 정권 심판투쟁은 세 가지 요인을 제거하거나 영향력을 낮추는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저임금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구축한 민주노총과의 협력을 이어 가고,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정의로운 전환 등 사회 의제에 함께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총선에서 한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내부 결속을 다질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총선을 정권 심판의 장으로 만든다는 복안이다. 지난 7일 오후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개최한 결의대회에서 김동명 위원장의 발언에서 집행부의 고민이 엿보인다. 김 위원장은 “김준영(연맹 사무처장)처럼 투사가 돼서 곤봉에 쓰러지라고 하지 않겠다”며 “적어도 조직된 우리 조합원들만이라도 결정적인 선거의 순간에, 정치의 순간에, 투쟁의 국면에서 마음을 모아 주고 함께 참여하는 것이 우리가 승리하는 유일한 길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11월 전국노동자대회를 앞두고 전국 순회를 통해 조합원을 설득해 나갈 계획이다.
김동명 위원장 “윤석열 대통령 입장 변화 있어야 대화 가능”
“광양사태 사과, 김준영 처장 석방도 소용 없어”
한국노총과 정권 간 화해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이날 김동명 위원장은 기자회견 뒤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광양사태에 대한 사과, 김준영 처장 석방 등을 (경사노위) 복귀 조건으로 삼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도 우리가 어떤 요구안을 내걸고 정부에게 받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자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진정성을 보여주는 행동과 발언·정책을 보여주며 노동자들에게 다가와야 가능하다”고 기준을 제시했다.
정부 차원의 한국노총 압박 카드는 많아 보이지 않는다. 회계서류 미제출을 이유로 과태료를 부과했고, 노동단체 지원사업에서 탈락시킨 것은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부 노조간부를 대상으로 검·경 수사가 있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경사노위의 식물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현재 경사노위에 노사정이 참여하는 위원회는 ‘ILO 기본협약 비준에 따른 공무원 노사관계 개선방안’을 논의해 온 공무원노사관계위원회뿐이다. 이 위원회마저 가동이 중단되면 경사노위는 전문가 연구단체 수준의 기능밖에 남질 않는다. 올해 초 가동한 노사관계 제도·관행개선 자문단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연구회가 주인공이다. 다만 공무원·교원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도입과 관련한 논의 기능은 남아 있다. 개정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과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에 따라 공무원·교원노조도 타임오프 적용대상이다. 구체적 한도나 적용방법 등은 경사노위 산하 공무원근무시간면제심의위원회·교원근무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서 정해야 한다. 근무시간면제심의위 구성은 12월11일부터 가능하다. 타임오프 도입에 따라 필수적으로 가동하는 위원회이기 때문에 사회적 대화라고 볼 수는 없다.
정부·여당, 노골적 한국노총 배제 기류
“노·사, 전문가, 청년 등과 개혁 완수”
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 중단 선언 이후 나온 정부의 첫 공식 반응은 ‘개의치 않는다’이다. 노동부는 이날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정부는 그간 어떤 방식으로든 대화를 계속 추진해 나가기 위해 다양한 주체의 사회적 대화 참여방안을 모색해 왔다”며 “현장 노·사, 전문가, 청년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더 폭넓게 수렴하면서 국민과 함께 이중구조 개선·법치주의 확립·노동규범 개선 등 개혁 완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을 제외하고 전문가, 일부 청년단체와 노조, 사용자를 앞세워 노동정책 개편안을 '완수'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이날 오후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경사노위와 노사대화가 중요하지만 경사노위를 유지하기 위해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 원칙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며 “엄정한 법집행, 노사법치, 노조회계 투명성 등 윤석열 정책 원칙이 불법적 시위로 영향받지 않는다는 점을 확실히 밝힌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국노총과의 관계 개선 필요성을 강조해 왔던 국민의힘 한 의원도 이날 “한국노총의 지금 행동은 크게 영향력이 없을 것”이라며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고 말했다. 김문수 경사노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서울대총동창회 강연에서 총연맹 체제의 대표성이 없더라도 엠제트(MZ)세대 중심의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와 한국노총 지역·산별 위원장과 계속 대화하겠다고 밝혔다. 경사노위 관계자는 “한국노총이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서 이전부터 만나오던 곳과 만나면서 대화가 아예 단절되는 것은 막자는 얘기”라며 “그들을 사회적 대화의 포장지로 활용하거나, (정책 개편 권고 등) 결과물을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노정 갈등은 내년 총선이 분수령이 될 것으로 시각이 많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현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생각이 없어 보인다”며 “총선까지는 기존 정책을 밀고 나가겠지만, 선거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급속도로 동력이 빠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노조를 때리면 표가 된다는 정부의 그간 태도가 이어진다면 장외로 나간 한국노총을 포함한 양대 노총과의 정면충돌은 내년 총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면 일방적 개혁과 노조 몰아붙이기가 이어질 것이고, 견제받는 결과가 나오면 노동계와 갈등을 일정하게 줄여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