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8일 국무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제정안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해야 할 안전보건 확보 의무와 중대재해로 인정되는 직업성 질병 범위 등을 담고 있다. 제정안은 지난 7월12일부터 8월23일까지 입법예고 기간 동안 노사와 국민의 의견수렴을 거쳤다. 이날 국무회의를 통과한 제정안은 당초 정부가 입법예고한 내용에서 큰 틀의 변화 없이 부분 수정에 그쳤다.

급성중독으로 한정된 중대 직업성 질병 범위
뇌심혈관계 질환 끝내 제외

입법예고 당시부터 논란이 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직업성 질병 범위는 급성중독 수준으로 한정한 24개 질병을 유지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동일한 유해요인에 따른 직업성 질병자가 1년 내 3명 이상 발생할 경우 중대 산업재해로 규정한다. 시행령 제정안은 해당 질병을 화학적 요인에 의한 급성중독과 이에 준하는 질병 24개 항목으로 제한했다. 다만 열사병의 발생 원인과 증상을 구체화했다. 입법예고안은 “덥고 뜨거운 장소에서 하는 업무로 발생한 열사병”으로 규정했는데 이날 의결된 제정안은 “고열작업 또는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하는 작업”으로 바꾸고, ‘심부체온상승 동반’을 추가했다.

노동계가 요구한 뇌심혈관계질환과 근골격계질환, 직업성 암, 사고성 요통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재계는 질병의 ‘중증도’를 반영할 것을 요구했지만 역시 반영되지 않았다.

누더기 된 ‘재해예방을 위한 인력·예산 확보’ 의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도 일부 구체화됐다. 우선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업무처리 절차를 마련해야 하는 의무과 관련해 제정안은 해당 절차에 따라 유해·위험 요인의 확인과 개선이 이뤄지는지 반기 1회 이상 점검해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기준에 따라 ‘분기별 1회 이상 점검’을 주장한 노동계 요구에는 못 미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핵심 내용은 기업이 재해를 막는 데 필요한 인력과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제대로 이행하라는 것이다. 정부의 시행령 입법예고안은 모법에서 위임한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 등’의 문구를 삭제해 정부가 자의적으로 모법의 의미를 축소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입법예고안에서 “안전 및 보건에 관한 인력, 시설, 장비 등을 갖추기 위한 적정한 예산”으로 두루뭉술하게 규정했던 것을 제정안은 “재해예방을 위해 필요한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 시설·장비의 구비, 확인된 유해·위험요인의 개선 등에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고 용도에 맞게 집행”하도록 수정됐다.

법률에 ‘재해예방’으로 명시한 것을 시행령에는 ‘안전 및 보건’으로 축소한 것은 맞지 않는다는 노동계 지적에 따라 해석의 여지를 남긴 것이다. 하지만 2인1조 근무와 과로사 예방을 위한 적정인력 보장이라는 노동계 요구사항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사업주의 안전보건 관계법령에 따른 의무이행 점검을 민간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한 조항도 그대로 유지한 점도 문제다. 그나마 제정안에서 건설업과 조선업은 하청에 업무를 맡길 때 적정한 공사(건조)기간에 관한 기준을 마련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학동 철거현장처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각지대를 좁히려는 노력은 없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노총은 “올해 상반기만 1천137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다”며 “껍데기뿐인 중대재해처벌법과 시행령으로는 매년 2천명이 죽고 10만명이 다치거나 병드는 노동현장의 안전보건을 개선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