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배제된 발전 5사 노동자들의 불만이 고조하고 있다. 정부가 화력발전을 대체할 신재생에너지를 민간산업을 중심으로 육성하면 장기적인 에너지 공공성이 훼손되고 석탄발전소 노동자의 고용에 심각한 불안을 초래하는데도 위기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발전 5사 노동자들은 쪼개진 발전사를 하나로 통합하고 재생에너지 산업에 공기업이 참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은 크게 두 가지 전략으로 진행한다. 하나는 최근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발표한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 1·2·3안에 따른 내용이다. 2050년 온실가스 순배출량 전망치를 세 갈래로 제시하고 이에 따른 10개 분야의 온실가스 순배출량 전망치를 각각 분석했다.
또 다른 갈래는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을 위한 에너지 뉴딜이다. 지난해 민간사업체 진출을 위한 규제 완화를 통해 산업군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의사결정 체계가 민첩한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재생에너지 산업을 진작해 재생에너지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신규산업 일자리도 제공한다는 복안이다.
민간기업 신속한 의사결정 기대할 수 있지만
대규모 전력생산 담보 위해 공기업이 나서야
그러나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비판도 상당하다. 특히 시급하게 에너지 전환을 이뤄야 하는 상황에서 발전 5사를 배제하는 것은 문제라는 비판이다. 송민 한국남부발전노조 위원장은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 전환의 목표는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라며 “결국 에너지 공공성을 확보하려면 발전 5사를 통해 진행하는 게 타당함에도 민간기업 위주로만 정부의 정책이 쏠려 있다”고 비판했다. 민간기업의 진출은 속도를 빠르게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다. 아무래도 공기업과 비교해 민간기업 의사결정이 신속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규모다. 에너지 전환을 통해 현재의 전력생산량을 대체하려면 결국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자금조달이 불가피하다. 이런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민간기업은 대기업이 유일하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위원)는 “현재 우리나라 전력수요의 대부분은 가정이 아닌 산업계인데 이런 산업계의 전력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투자여력을 지닌 곳은 민간 대기업과 공기업밖에 없다”며 “민간 대기업의 참여도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 절반 수준은 공기업이 주도해야 여러 문제에 대응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여러 문제란 재생에너지가 갖고 있는 불안전성과 재생에너지 구축을 위한 장기적인 자금 조달 능력, 그리고 재생에너지 생산을 강화할 전문가 그룹의 기술력이다. 소규모 풍력발전기업 같은 곳이 이런 문제에 적극 대응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과거 민영화 염두에 둔 5개 발전사 분할 추진
민자합작 형태 재생에너지 생산으로 투자 중복
이 때문에 등장하는 게 발전 5사 통합이다. 발전 5사는 20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 계획에 따라 한국전력공사에서 분리해 설립했다. 전력산업구조개편은 한전을 발전분할과 배전분할을 통해 쪼개는 게 뼈대였다. 이에 따라 2001년 5개 발전 자회사를 설립했고 2003년 배전분할까지 추진했다. 핵심은 민영화였다. 분할한 발전사와 배전사를 민영화하려던 것이다. 그러나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배전분할은 중단했다. 이후 발전사만 5개로 쪼개진 현재의 형태로 굳어졌다.
이 결과 투자의 중복이 나타난다. 특히 재생에너지 분야는 더욱 그렇다는 평가다. 송민 위원장은 “발전 5사는 석탄발전량에 대한 탄소배출량만큼을 재생에너지에 투자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며 “이에 따라 민자합작(SPC) 형태로 법인을 설립해 재생에너지에 투자를 하는데 사실상 효과성도 없고 발전사 간 중복이 많은 불필요한 출혈이다”고 비판했다.
발전 5사를 통합하자는 데에 대한 공감대도 있다. 황인철 기후위기 비상행동 총괄간사는 “에너지는 물처럼 시민들의 일상에 필요한 필수재인데 공공성을 중점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라며 “주체를 어디로 할지 다양한 논의가 있겠지만 공기업 통합을 통한 공공성 담보의 방향성도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다”고 설명했다.
석탄발전소 위주 5개사 재생에너지 배제
발전소 폐쇄 뒤 노동자는 ‘패잔병’ 전락
발전 5사를 한 곳으로 합치는 안 외에도 남부와 중부를 거점으로 이원화하는 방안도 나온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 같은 방안을 제시했다. 다만 기능 중복을 해소하기 위한 통합인데 다시 2개로 발전사를 유지하는 게 타당하냐는 지적도 있다. 의원실 관계자는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한 것이고 정답이라는 입장은 아니다”며 “전력을 송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누출량이 원전 1기에 맞먹는 수준이다 보니 이런 비효율을 해소하고 비용을 낮추기 위해 지역중심의 전력생산·소비를 고민하면서 권역화하자는 제안”이라고 설명했다.
인력도 문제다. 석탄발전소 위주의 발전 5사를 재생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배제하면 결국 석탄발전소는 문을 닫는 수밖에 없다. 노동자는 패잔병이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지만 정작 탄소중립위가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에는 이런 과정이 전혀 담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