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성과급은 근로의 대가일까, 아니면 동기부여를 위해 주는 “은혜적 금품”일까. 경영성과급을 퇴직금의 산정 기초가 되는 평균임금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는 소송이 번지고 있다. 특히 삼성디스플레이 등 삼성그룹 계열사에서는 노조가 주측이 돼 소송인단을 모집하고 다음달 집단소장을 접수한다는 계획이어서 주목된다.
대법원, 누구 손 들어줄까
지난달 25일 서울남부지법은 LG디스플레이 퇴직자가 제기한 퇴직금 소송에서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LG디스플레이는 2005년부터 경영실적 등을 반영해 경영성과급(PS·PI)를 지급하고 있다. 보통 150~300% 수준이고 많을 때는 440%까지 지급될 때도 있었다. 2018~2019년에는 지급되지 않았다. 회사 취업규칙과 퇴직금 규정의 평균임금 산정 항목에 경영성과급은 포함되지 않았다. 소송을 제기한 A씨는 “2005년부터 15년 동안 매년 1월 초 관행적으로 지급됐다”며 경영성과급이 임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퇴직금은 평균적인 생활임금을 보장하는 취지인데 성과급 지급 시점에서 퇴직하면 퇴직금이 크게 오르기 때문에 퇴직금 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특히 “경영성과급은 원래 주주의 몫”이라며 “노동자가 경영성과에 기여한 부분은 이미 지급된 급여에 포함돼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 퇴직자들도 경영성과급(TAI·OPI)도 임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급심 판단은 엇갈렸다. 지난 6월17일 수원고법은 “경영성과는 평가기간 국내외 경제상황이나 경영진의 경영판단 등 개별 노동자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로 결정된다”며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지급시기와 대상이 정해져 있지 않은 점과 퇴직시기에 따라 평균임금 산정이 달라지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런데 같은날 서울중앙지법은 “개별 노동자의 근로제공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이 모이지 않으면 사업 수행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인센티브는 집단으로 제공한 협업근로가 경영성과에 기여한 가치를 평가해 그 몫을 노동자에 지급한 것이므로 근로제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삼성전자가 2000년 이후 매년 경영성과급을 지급했고 월 급여의 800%에 이르는 상당히 큰 액수인 점도 고려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4월 현대해상화재보험 퇴직금 소송에서 같은 취지로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도 6월30일 옛 한국유리공업 임금소송에서 “당기순이익에 따라 지급하는 경영성과급은 임금에 해당한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최근 하급심 판단이 엇갈리고 있는 만큼 노사의 눈과 귀는 대법원으로 쏠리고 있다.
재계는 경영성과급 지급률이 매년 달라지는 등 근로의 대가가 아니라 동기부여 목적에서 시혜 차원에서 지급하는 금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는 2018년 대법원이 이미 공공기관 경영성과급을 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만큼 민간기업의 경영성과급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반도체·전자업계 노조 확산 지렛대 될까
경영성과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반도체·전자업계에서는 집단소송 움직이 확산하고 있다. 금속노련 삼성그룹노조연대는 소송인단을 모집해 다음달 퇴직금 집단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퇴직자 외에도 최근 3년 내 퇴직금을 중간정산하거나 확정기여형(DC형) 퇴직연금을 받는 재직자도 가능하다.
삼성디스플레이노조·삼성화재노조·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노조·삼성생명노조가 적극적이다. 연맹 관계자는 “삼성에는 여전히 실명이 드러날까 봐 노조 가입을 망설이는 노동자들이 많다”며 “실익이 되는 임금소송을 실명으로 제기하고 공개적으로 노조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집단소송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7월 화섬식품노조 SK하이닉스사무직지회도 13명의 소송인단을 모집해 소장을 냈다. 소송인단에 참여한 노동자는 모두 재직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