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e브리핑 갈무리
정부가 12일 중대재해를 일으킨 경영책임자와 기업을 처벌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입법예고한다. 지난해 463명의 목숨을 앗아 간 뇌심혈관계질환은 중대재해 범위에서 빠졌다. 건설 철거현장이나 공연장에서 참사가 일어나도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엄벌은 불가능하다.
정부부처 합동으로 지난 9일 발표한 시행령은 15개 조항으로 모법에서 위임한 △중대산업재해 직업성 질병 범위 △중대시민재해 공중이용시설 범위 △중대산업재해 안전보건확보의무 등이다. 모법에서 중대 산업재해는 △사망자 1명 이상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동일한 유해요인에 따른 직업성 질병자 3명 이상으로 규정한다.
중대 직업병, 뇌심혈관계질환 빠진 24개 질병으로 한정
이 가운데 급성중독 등의 직업성 질병 범위를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했는데 노사 이견이 커 논란이 일었다. 시행령은 직업성 질병자 범위를 일산화탄소 중독, 열로 인한 중추신경계 이상(열사병) 같은 유해인자 취급으로 인한 질병 24개로 엄격히 제한했다. 지난해 업무상질병 사망자(1천180명)의 39.2%를 차지하는 뇌심혈관계질환이나 직업성 암·근골격계질환 등은 해당되지 않는다.
김규석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인과관계 명확성(급성), 사업주의 예방가능성, 피해의 심각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뇌심혈관계질환이 포함될 경우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층이나 가족력 보유자같이 질병발생 가능성이 높은 계층에 대한 채용이 위축되고, 현재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업무상 질병에 대한 소송이 증가하면서 오히려 산재 인정까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노동계는 “최근 8개월 사이 뇌출혈로 쓰러진 택배노동자만 6명을 비롯해 1년에 2천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쓰러지고 있다”며 “사용자 책임회피를 위한 시행령”이라고 비판했다.
경영책임자 처벌의 근거가 되는 안전보건확보의무 관련 내용은 노사 모두 반발하고 있다. 안전보건 인력배치는 중대산업재해의 경우 300명 이상만 전담인력을 배치하도록 한 산업안전보건법의 안전보건관리자 배치 기준을 준용했다. 중대시민재해는 ‘적정 인력배치’ 의무만 규정했다. 안전보건 예산은 사업장마다 구체적 상황이 다르다는 이유로 적정 예산편성 의무만 규정했다. 경영책임자 범위도 한정하지 않았다. 다만 설명자료를 통해 “대표이사 권한을 위임받아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대표이사 책임이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처벌 대상이 되는 경영책임자는 실질적으로 안전보건확보의무 책임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개별적으로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경영책임자 범위와 의무가 여전히 포괄적이고 불분명해 어느 수준까지 의무를 지켜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반발했다. 노동계는 “2인1조나 과로사 근절을 위한 인력확보는 온데간데없고 안전 명목으로 감시·통제인력만 확대했다”고 비판했다. 위험의 외주화를 통제하는 장치도 도급·용역·위탁업체 선정시 적정한 안전보건관리 능력 확인·점검의무 정도만 부여해 한계가 있다고 봤다.
노동부 “해설서에서 자세한 내용 안내하겠다”
중대시민재해 범위도 쪼그라들었다. 모법은 공중이용시설의 사각지대를 예방하기 위해 ‘재해 발생시 생명·신체상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장소’를 별도로 뒀다. 시행령은 이를 도로교량, 철도교량, 터널, 철도터널, 주유소와 가스충전소, 놀이공원 등 6곳으로 한정했다. 광주 붕괴참사가 발생한 건설 철거현장이나 대규모 참사가 반복된 공연장 등은 빠졌다.
시행령이 모호하다는 비판에 대해 노동부는 “제정법인 만큼 법의 안정적 실행에 주안을 뒀다”고 설명했다. 김규석 국장은 “중대재해처벌법 4조1항4호의 안전보건 관계 법령 리스트를 포함해 시행령에 담기지 못한 내용을 해설서를 통해 안내하겠다”고 설명했다.
중대산업재해를 수사하는 전담 조직의 역할에도 관심이 쏠린다. 노동부는 지난 1일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신설하고 중대산업재해감독과를 두는 등 직제를 개편했다. 지방관서에도 광역중대재해수사와 예방업무를 담당할 조직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