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보도국 작가 2명은 중노위 부당해고 구제 재심신청 사건 당일인 지난 3월19일 서울 마포구 MBC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은 ‘정말 이해하고 싶다’는 말의 방증일지도 모른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은 2명의 MBC 보도국 작가들은 연신 “MBC를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들에게는 해고 사유, 해고 과정, 노동위원회 심문회의에서 업무지시를 부정하던 사측 관계자의 말들이 모두 물음표로 남아 ‘정말 알고 싶은 것’이 됐다. 작가들은 “함께 일했던 박성제 MBC 사장을 만나서 ‘왜 해고했냐’고 묻고 싶다”고 했다. 이들이 받아 본 중노위 부당해고 구제 재심신청 판정서에는 사용자로 주식회사 문화방송과 대표이사 박성제라는 이름이 나란히 명시돼 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지하철 사당역 인근에서 최지영(가명)·박민주(가명) 작가를 만났다. 두 작가는 모두 2011년부터 2020년 6월까지 MBC 생방송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투데이>에서 일했다. 최지영 작가는 2011년 6월부터 ‘이 시각 세계’라는 코너를 맡았고, 박민주 작가는 같은해 8월부터 ‘아침신문보기’ 담당 작가로 일을 시작했다. 9년간 일한 직장이었지만 해고 통보는 전화 한 통으로 끝났다. 한 달 뒤 계약을 해지한다는 일방적 통보였다. 계약기간은 6개월이나 남아 있었다.

“‘해고는 사형선고’라던 박성제 사장, 우리를 살인한 것”

6개월여의 다툼 끝에 이들은 중노위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다. 두 작가는 지난해 각각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접수했다. 초심은 모두 각하됐지만, 두 사건을 병합한 중노위는 지난 3월 이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이며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판정했다. MBC는 중노위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이들을 원직복직하라는 구제명령도 이행하지 않았다. MBC는 “프리랜서 업무위임계약은 방송사와 작가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해 6월 해고 통보 이후, 이들은 생업을 멈춰야만 했다. 노동위 사건에 대응하고, 각종 언론 인터뷰를 소화하며 싸움은 길어졌다. 최지영 작가는 “사회 시스템 자체가 프리랜서를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장 생계 걱정을 하게 됐다”며 “오래 다닌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돼 가족들도 상실감과 허탈감이 나 못지않게 크다”고 토로했다.

두 작가는 박성제 사장이 보도국 소속 기자였던 시절을 기억한다. 최 작가는 채용 당시 박성제 사장이 면접관이던 것과 기사 쓰기를 알려 주던 일, 해직 뒤 연락을 주고받은 일을 떠올렸다. 박성제 사장은 2012년 6월 김재철 MBC 사장 재임 당시 ‘파업 지휘’를 이유로 최승호 PD와 함께 해고됐다.

최지영 작가는 “박 사장이 해직기자였기 때문에 책임감 때문에라도 우리를 복직시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며 “그는 자신의 책 첫 장에 ‘해고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썼는데, 사형선고는 정규직에게만 해당된다는 의미냐”고 반문했다.

박민주 작가는 “박 사장 말대로라면 우리는 살해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박 작가는 “노동자에게 회사랑 싸우며 소송을 한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라며 “(이를 알고 있을) 회사가 행정소송을 계속한다는 게 정말 이해되지 않아 박 사장을 만나 ‘왜 해고했냐’고 묻고 싶다”고 말했다.

‘방송가 인적쇄신’은 왜 비정규 노동자에게만 적용될까

프리랜서 계약이 작가와 MBC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사측의 주장도 반박했다. 박민주 작가는 “방송작가는 TBS 교통방송 정규직 10명을 제외하고는 다른 방송사에서 모두 프리랜서”라며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원고료가 높아 방송사와 협상력을 가지거나 일감을 여러 개 쥔 작가를 뺀 다수 작가는 프리랜서 계약을 사실상 강요받는 처지다.

<뉴스투데이>는 평일 오전 6시 방영되는 생방송 뉴스다. 방송시간을 맞추려면 새벽 3시30분쯤 출근해야 한다. 박 작가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도 출근을 먼저 하고 빈소로 갔다. 최지영 작가는 큰 교통사고를 당한 날 병원보다 회사를 먼저 찾았다. 생방송을 메꿔야 한다는 생각과 프리랜서라는 불안한 일자리 탓이다.

이들이 떠나보낸 방송사 비정규직 동료들은 손으로 꼽기 어려울 만큼 많다. 스스로 원해서 회사를 떠나는 이들보다 회사에 의해 일을 그만두는 사람이 더 많았다. 제작비를 줄여야 한다는 명령이 떨어지면 계약직 리포터나 작가들의 급여부터 깎인다. 계약직 PD는 2년을 채우기도 전에 잘렸고, 5년 넘게 일한 리포터도 떠밀려 회사를 나갔다.

이들이 방송사에서 들은 해고사유는 ‘프로그램 개편과 인적쇄신’이었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였다. 해고 통보 한 달 전 시청률이 높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해고 뒤에도 코너 변화는 없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청자의 취향을 좇는다는 목표로 제시되는 ‘인적쇄신’은 프리랜서나 계약직에게만 적용됐다. 방송사에서는 시청률이 주춤하면 정규직 책임자를 문책하기보다 ‘새로운 얼굴의 리포터를 써 보자’는 제안이 나오거나 ‘작가를 갈아치우는 일’이 잦다고 한다.

최 작가는 “방송사 내부에서는 (비정규 노동자를 해고하면서) 생계나 직업이라는 공감이 없다”며 “10년 가까이 일한 나와 박 작가는 어쩌면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말했다. 박 작가는 “오히려 MBC가 운이 좋은 것 아니냐”고 했다. 휴일도 없이 새벽마다 출근하는 힘든 일을 버텼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 작가가 하던 일은 이전에 국제부 기자들이 한 달씩 번갈아 가며 했던 일이다. 박 작가도 여러 개 신문을 비교해 뉴스 아이템을 선정하고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담당·총괄 PD가 세세하게 업무를 지시했다.

박 작가는 “새벽 2시에 일어나 일하기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다른 일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프리랜서 계약이 이득이라는 MBC에 우리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정규직은 쌀 한 가마니, 계약직은 좀 더 적게,
프리랜서는 안 주는 곳이 방송국”

방송사는 프리랜서와 정규직, 계약직을 명확히 구분했다. 회사는 박민주 작가가 제기한 지노위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에서 박 작가가 노동자가 아닌 근거로 “직원에게는 사원증이 발급되고, 프리랜서에게는 상시출입증이 발급된다”고 주장했다.

박 작가는 “출입증 목줄 색깔이 정규직 노동자와 다르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다”며 “출입증 발급 기준도 일정한 출퇴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데, 출입증을 증거로 내민 회사의 주장에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10년 넘게 경험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은 일터 곳곳에 촘촘히 스며 있었다. 최지영 작가는 “연말에 쌀을 주는데 정직원은 쌀 한 가마니, 계약직은 좀 더 적은 10킬로그램, 프리랜서에게는 안 줬다”며 “보도국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뉴스로 다루면서도 작가들의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 연장선상에서 사고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6월 마지막 출근날 “기념사진을 찍자”던 사람들을 잊기 어려웠다.

‘프리랜서’라는 말은 허울뿐이었다.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는 이유로 워크숍·야유회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했다. 어떤 PD는 행사 불참자 명단을 일일이 확인했다. 초기 계약된 업무 외에 번역업무가 추가되거나 외부행사에 참여한 것도 모두 회사가 요구한 일이었다.

최 작가는 “회사 주장대로 우리가 프리랜서라면 프리랜서답게 선을 명확히 그어 일했어야 했다”며 “방송사에 종속돼 일을 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정규직이 아니라 내부 복지 등에서 차별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MBC 홈페이지 갈무리
▲ MBC 홈페이지 갈무리

“방송사, 작가 함부로 자를 수 있다는 생각 거뒀으면”

부당해고 신청을 결심하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업계 내 평판과 방송사를 상대로 싸울 수 있을지가 걱정됐다. 지노위 심판회의를 거치고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각하되면서 스트레스는 더욱 커졌다.

지노위 판정서에 따르면 MBC는 “프리랜서 방송작가는 방송사 직원으로 채용된 사례가 없다”거나 “작가들과는 모두 업무위임계약을 체결한다”고 주장했다. 지노위도 작가들을 근로자로 보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점을 꼽았다. ‘프리랜서 계약이기에 노동자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은 동어반복에 가깝다.

최지영 작가는 “작가가 계약에 대해 문제제기하면 일을 할 수 없고, 회사가 만든 계약서에 따라야 하는 입장”이라며 지노위 판정을 문제 삼았다.

노동자성을 증명하는 과정은 지난했지만 수많은 작가들에게 도움이 될 선례를 남기고 싶었다. 생방송 뉴스 프로그램에서 숨 고를 틈 없이 일했기에 노동자성을 입증할 증거를 내보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박민주 작가는 “방송사에 ‘작가를 쉽게 자를 수 없다’는 생각을 심어 주고 싶었다”며 “회사를 상대로 문제를 일으켜 안 좋은 소문이 날까 걱정했지만 쉬운 해고가 문제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MBC, 행정소송 멈추고 중노위 판정 받아들여야”

MBC가 제기한 행정소송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방송사들은 ‘처음으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은’방송작가의 중노위 판정을 보도하지 않았다.

박민주 작가는 “비슷한 일을 겪다가 떠나간 사람들이 ‘계속 싸우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들은 삶을 포기한 게 아니라 더 싸우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음을 알게 됐다”고 한숨 지었다.

최지영 작가도 트라우마를 경험했다. 오랫동안 자부심을 갖고 일한 직장에서 내쳐진 일은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앞으로 어떤 직장에서 마음을 주고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남았다.

고 이재학 PD를 노동자로 인정한 청주지법 판결을 비롯해 방송사 비정규직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결정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JTBC 뉴스팀에서 일하던 방송작가도 고용노동부에 낸 퇴직금 진정이 받아들여져 노동자로 인정받았다. 소위 ‘인하우스 작가’로 불리며 방송국에 종속돼 일하는 작가들에 대한 직접고용 요구는 높아졌다.

박 작가는 “MBC도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정소송을 멈추고 원직복직을 명령한 중노위 판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들 방송사의 꽃을 보도국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우리가 일하던 <뉴스투데이> 프로그램에서만 프리랜서, 파견, 도급, 2년 계약직, 무기계약직, 정규직 등 정말 많은 고용형태가 있었어요. 보도국 내부도 그런데, 방송국 전체는 어떻겠어요. 정규직을 피해 가려는 방송 비정규직 문제, 도급계약관계에서도 이뤄지는 수많은 업무지시, 그걸 방송국이 정말 모르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