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재산연구원노조


“업무추진비를 잘못 썼으면 환수라도 하는 게 상식인데,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왜 아무런 조치가 뒤따르지 않는 것이죠?”

김경준 지식재산연구원노조 위원장이 17일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답답함을 토로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국지식재산연구원장의 비위가 관심을 받았을 때만 해도 해결은 멀지 않아 보였다. 그렇지만 국감이 끝난 뒤 약 7개월이 흐른 현재, 김경준 위원장은 규정 위반에 따른 감봉 징계를 받고 재심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반년 동안, 왜 판이 뒤집힌 것일까.

권택민 연구원장 개인 비위 의혹
지난해 국정감사서 드러났지만…

권택민 지식재산연구원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감에서 관용차량 무단사용과 채용비리, 업무추진비 부적정 집행 의혹을 받았다. 김경준 위원장이 “제대로 된 처벌이 없었다”고 힘줘 말하는 대목은 업무추진비다.

지난해 국감 당시 노조가 제기했던 업무추진비 문제는 단순했다. 내용을 살펴보자. 2018년 8월 권 원장 취임 뒤 국감 직전인 2020년 6월까지 그가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쓴 돈은 2천582만6천원이다. 이 가운데 연구원이 소재한 서울 강남이 아니라 권 원장 자택 주소지 근처에서 사용된 돈은 976만5천원이다. 무려 37.8%다. 3번 중 1번은 집 근처에서 법인카드를 사용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권 원장은 기관장 업무추진비 외에 기관발전 관련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또 697만5천500원을 썼다. 이 내용은 아예 공시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원장 취임 이후 명절 선물을 기관 예산으로 구입하고 수령 대상자에 지인이나 공공기관장, 친인척을 모두 포함시킨 사례도 있었다.

이런 내용 일부는 상급기관인 특허청의 특별점검에서 드러났지만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권 연구원장에 대해서는 업무추진비 집행관리 부적정으로 개인주의만 내렸다. 김 위원장이 “상식적이지 않다”고 지적하는 배경이다.

한계 뚜렷했던 특허청의 특별점검
수사 지지부진, 감사원 감사 무산

특허청은 지난해 10월 국감에서 권 원장의 비위 의혹을 지적받고 같은달 14일부터 30일까지 보름간 특별점검을 실시했다. 앞선 개인주의 통보가 이 특별점검의 처분 결과다.

관용차량관리 부적정도 실은 업무추진비와 함께 노조가 주장하는 ‘횡령’의 한 갈래다. 지난해 국감에서 권 원장이 관용차량을 본인의 자택에 두고 주말과 휴일에 이용한 정황을 지적받았다. 권 원장 관용차량 주유비로 지출한 돈은 2019년 한 해만 1천100만원이다. 국감 당시 자료를 살펴보면 원장 관용차량 주유는 금요일과 휴일 전날 주유한 뒤 월요일 같은 업무시작일에 다시 주유하는 상황이 반복했다. 노조에 따르면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주유된 비중이 2018년~2020년 6월까지 34.6~55%다.

특허청은 특별점검에서 주유량과 주유금액 관리를 소홀히 한 주임에게 문책을 요구했다. 특별점검 처분요구서 중 관용차량 관리 부적정 조치사항을 보면 “차량관리지침 등을 위반해 운행일지 작성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차량 관리 업무를 철저히 하고(주의, 운행일지의 주행거리를 과다하게 작성하고 주유량 및 주유금액 관리를 소홀히 한 주임에 대해 연구원 인사규정에 따라 징계처분 요구)”라고 적고 있다. 주말·공휴일에 권 연구원장이 직접 차량을 운행한 데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공분 불렀던 현장실습생 채용 의혹도 ‘유야무야’

권택민 원장이 본인 자녀가 취업한 장애인시설의 장애인을 현장실습생으로 채용한 문제는 아예 누락했다. 특허청 감사실 관계자는 “문제를 점검하기 위해 장애인시설에 협조를 요청했으나 민간기관이다 보니 감사실이 할 수 있는 영역에 한계가 있었다”며 “눈높이에 부족했다면 아쉽게 생각하지만 행정기관으로서 의혹 규명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권 원장이 뒤늦게 영수증 같은 문건을 첨부해 사용처를 증빙하면 문제로 지적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사법당국의 수사도 느렸다. 노조는 국감에서 의혹으로 제기된 것을 제외하고 그간 발생했던 부당노동행위 같은 문제를 지난해 2월13일 일찌감치 고용노동부 강남지청에 고소했다. 강남지청은 관련 내용을 기소 의견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2월30일이 돼서야 권 원장의 노조 지배·개입 정황을 인정해 관련법 위반으로 70만원 벌금형을 확정했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 중이다. 연구원 현안에 대해 내사한 강남경찰서도 지난해 12월2일 노조의 고발장을 접수하고 권 연구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그러나 이후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추가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사이 조합원의 피로가 누적되자 노조는 권 연구원장 임기만료 전까지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피하는 전략을 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화가 됐다.

잇단 용두사미 감사·수사에 자신감?
노조 “1인 시위 비롯해 원장 비판 재개할 것”

연구원쪽은 지난달 23일 돌연 김경준 위원장에게 징계처분을 내렸다. 수위도 감봉 1개월로 강했다. 김경준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계약종료를 통보받은 계약직이 억울하다며 공론화를 요청한 인사위원회 자료를 노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는 게 사유다. 5개월이나 흐른 건을 돌연 문제 삼아 징계한 것이다.

사용자쪽은 “규정위반에 따라 노조위원장이 아닌 김경준 선임연구원 자격으로 징계한 것”이라고 맞받았다. 김경준 위원장은 26일 즉각 재심을 청구했다.

김경준 위원장은 떠들썩했던 국감 이후 제대로 된 의혹규명과 처분이 이뤄지지 않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퇴임을 2개월여 앞둔 연구원장이 무단협 상황에서 노조위원장을 철지난 건으로 징계하겠다는 발상이 당혹스럽다”며 “특허청과 검경, 게다가 청와대에 민원제기까지 했음에도 어떤 행정적 처분이 이뤄지지 않자 사측이 자신감을 얻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택민 연구원장 퇴임을 앞두고 깊어진 갈등에 노조도 정면대응할 방침이다. 김경준 위원장은 “조만간 권 원장 문제를 비판하는 1인 시위를 비롯한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