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에게 더 유리한 내용을 담은 근로계약이라면 노조가 회사와 맺은 단체협약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기존 근로계약보다 상여금 지급률을 축소한 교섭대표노조와 사측의 단체협약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구지법(판사 김성수)은 경북 영천 소재 자동자부품 제조업체 ㄷ사 노동자 17명이 미지급 상여금을 지급해 달라며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노동자 손을 들어 줬다고 밝혔다.
2014년부터 2018년 입사한 ㄷ사 노동자들은 “상여금은 월 218시간에 해당하는 임금의 600%를 각각 3, 6, 9, 12월과 구정, 추석이 속한 월에 6회 분할해 지급하며 지급일 현재 재직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내용을 담은 근로계약을 맺었다. 취업규칙에도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문제는 사측이 2019년 1월부터 연 상여금 지급률을 600%에서 450%로 축소하고 매월 나눠 지급하는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개정하면서다. 사측은 변경된 취업규칙에 대해 노동자 동의를 구했다. 하지만 소수노조 조합원은 변경 내용이 담긴 근로계약서 서명을 거부했다.
교섭대표노조와 사측은 지난해 3월 취업규칙 변경 내용을 그대로 담아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소수노조 조합원들은 회사에 미지급상여금을 지급하라고 소를 제기했다.
쟁점은 상여금 지급률을 축소하고 지급시기를 바꾼 것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인지, 단체협약이 근로계약보다 우선하는지 여부였다.
사측은 “상여금 지급률은 낮아졌으나 (재직자 조건을 없애고 월할지급하면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산입된 결과 각종 법정수당 등의 인상을 통해 근로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됐다면 불리한 변경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33조1항을 근거로 “유·불리를 따질 것 없이 단체협약이 근로계약에 무조건 우선해서 적용돼야 한다”며 미지급 상여금이 없다고 주장했다. 노조법 33조1항은 “단체협약에 정한 근로조건 기타 근로자의 대우에 관한 기준에 위반하는 취업규칙 또는 근로계약의 부분은 무효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연간 상여금 지급률 축소는 그 자체로 근로자들에게 불합리한 내용임이 명백하다”고 판시했다. 정기상여금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켜 매해 오르는 최저임금으로 임금수준이 높아지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이지 통상임금을 높이기 위한 상여금 지급률 축소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노조법 33조1항에 대해 재판부는 “단체협약보다 불리한 내용의 근로계약에 한해 이를 무효로 하겠다는 취지일 뿐이라고 해석해야 한다”며 “(단체협약의 내용이 상여금) 최고기준을 정한 것이라고 해도 유리한 근로계약의 내용이 법률상 무효라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노동자를 대리한 권영국 변호사는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개별 근로계약은 취업규칙보다 우선한다는 판례는 있지만, 개별 근로계약이 규정한 근로조건이 단협보다 노동자에 더 유리한 경우에 대한 대한 판례가 거의 없었다”며 “노조법 33조1항의 의미를 구체화한 판결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