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다니던 병원에서 ‘다음달부터 나오지 마’라는 통보를 받은 물리치료사 박지안씨. 그는 노동절인 5월1일 ‘해고자’가 됐다. 박씨는 의사의 과잉진료에 의견을 내비친 게 해고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는 억울했다. 법률구조공단을 비롯해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자신의 부당함을 부당하다고 인정해 주는 곳이 없었다고 했다. 그들은 그저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만 되풀이했다.
‘노동자 5명 미만’이면 작동 멈추는 권리
차별 제도화하는 근기법 11조
131회 세계노동절을 맞아 <매일노동뉴스>는 근로기준법 적용을 제외한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 5명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들의 경험은 공통점이 많았다. 부당함을 지적하다가 직장내 괴롭힘과 해고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이들은 보호받지 못했다.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 이들은 하나같이 “우리는 사람이 아니냐”고 외쳤다.
4와 5는 숫자 1 차이지만 근로기준법에서는 결정적 차별을 만든다. 만약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 상시노동자수가 4명 이하라면 연차휴가도 없고, 하루 8시간으로 제한한 노동시간도 무용지물이고, 하루 24시간 일해도 연장·야간근로 가산수당도 받을 수 없다. 회사 사정으로, 혹은 코로나19 때문에 행정기관 명령으로 휴업해도 휴업수당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 4명 이하인 직장은 직장내 괴롭힘에도 무력하다. 그리고 말 한마디로 해고당해도 찍소리도 낼 수 없다.
근기법 11조의 위력이다. 이 조항은 상시 5명 이상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만 근기법을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시 4명 이하 노동자를 사용하는 경우는 일부 규정만 적용받을 수 있다.
산재사망 확률, 300명 이상 사업장의 9배
목숨도 차별받는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2019년 기준 580여만명이다. 다시 말해 임금노동자 4명 중 1명은 근기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노동권의 제도적 차별은 누구나 평등하게 누려야 할 생명권마저 위협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0년 882명이 산재사고로 사망했는데 3명 중 1명은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죽었다. 사망만인율을 보면 300명 이상 사업장은 0.12인데 5명 미만 사업장 이보다 9배 가까이 높은 1.04를 기록했다. 5명 미만 사업장에서는 1만명당 1명꼴로 일하다 사고로 죽는다는 의미다. 전체 사업장 사망만인율(0.46)의 두 배를 넘는다.
올해 초 제정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은 5명 미만 사업장에 적용을 제외했다. 적용을 제외한 특별한 근거는 없다. 노동계는 근기법 11조가 5명 미만 사업장을 적용제외하지 않았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의 차별 적용도 없었을 것으로 추론한다.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만들자
헌법은 근로조건의 기준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하도록 했다.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최소한의 노동조건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비록 헌법재판소는 2019년 근기법을 상시 4명 이하 사업장 노동자 적용 제외가 합헌이라고 결정했지만 근기법 11조 폐지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미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 일자리위원회에서 4명 이하 사업장까지 근기법을 확대·적용하는 방향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관련 근기법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운동도 가시화하고 있다. 권리찾기유니온이 주축이 돼 지난달 입법추진단이 구성됐다. 가짜 5명 미만 사업장을 고발해 온 권리찾기유니온은 지난달 29일 입법추진단 1차 회의를 열었다. 하은성 권리찾기유니온 정책실장은 “근기법 2조 사용자와 근로자 정의, 11조 적용범위를 개정하는 방향으로 논의 중”이라며 “친족만 고용하는 사업장을 제외하고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