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미 공인노무사(노무법인 비젼 서울분사무소)
근로감독관집무규정은 근로감독관의 집무집행에 필요한 사항을 정한 행정규칙이다. 규정 37조의2 1항은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별도의 독립된 공간에서 조사하도록, 2항은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 등에게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별도의 독립된 공간에서 조사하도록 정하고 있다. 최근 나는 직장내 성희롱 사건을 진행하면서 바로 이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별도의 독립된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느꼈다. 그 경험을 공유하고자 이 글을 쓴다.
상담자(신청인)는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진행하는 경력단절여성 직업훈련 과정을 수강하던 중 취업상담사가 공유한 채용공고문을 보고 이 사건 사업장에 면접을 보게 됐다. 면접 과정에서 법인 대표로 추정되는 남성 면접관은 신청인에게 “애를 왜 안 낳냐” “피임하냐?” “남자랑 같이 출장 갈 수 있냐?” 등의 질문을 했다. 면접 과정에서 굴욕감을 느낀 신청인은 다음날 고용평등상담실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들을 검색했고, 서울직장성희롱성폭력예방센터 위드유를 통해 내가 사건을 대리하게 됐다.
나는 진정서 하단에 ‘규정 37조의2 1항에 따라 피해자와 동일한 성(性)인 여성근로감독관을 배정해 주시고, 별도의 독립된 공간에서 조사 요청드립니다’라고 특별히 기재했다. 그런데 막상 조사 통보를 받고 출석했을 때 보통의 임금체불 사건과 다름없이 양옆에 다른 근로감독관과 민원인들이 있는 장소에서 사건조사가 시작됐다. 나는 근로감독관집무규정 내용을 언급하며 재차 독립된 공간에서 조사할 것을 요청했으나 근로감독관은 “거기에 PC가 없어요”라며 무성의하게 대답하고 조사를 계속했다. 감독관 질문에 힘겹게 대답은 하고 있으나 신청인은 작아졌다. 잘못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데 어깨가 움츠러들고 고개는 숙이고 목소리는 작아진다.
노동부에 진정을 접수하기 전 나는 신청인에게 물었다. “진정을 하더라도 불인정될 수 있고, 인정되더라도 피해자한테 직접적으로 금전적인 보상은 없습니다. 반면 그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하고, 시간 내서 출석 조사도 받으셔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힘들 수 있습니다. 그래도 계속 진행하실 건가요?” 그때 신청인은 대답했다 “그 대표는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직도 모를걸요. 인정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보상을 바라는 것도 아니에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있게 해 주고 싶어요. 그래야 다른 사람은 저 같은 수모를 겪지 않겠지요.” 똘똘하고 당찼다. 그런 신청인이 다시 작아지고 있었다. 본인이 신청한 권리구제 사건조사 담당 근로감독관 앞에서.
‘원래 다 이런가요?’라는 신청인의 눈빛을 보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큰소리로 항의했다. 주위 감독관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시끄럽고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던 담당 감독관은 느릿느릿 일어나 누군가에게 걸어가 열쇠를 받더니 우리를 다른 공간으로 안내했다. 정돈되지는 않았으나 별도의 안정된 공간이었고, PC도 멀쩡하게 있었다.
감독관의 질문 태도는 아까와 다르지 않았지만, 별도 공간에서 조사를 받는 신청인은 많이 달랐다. “취업이 너무 절실해서 그런 거지 같은 질문에도 아니라고 한마디 하지 못한 채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 대답한 자기 자신이 너무 바보 같고 싫었다”던 신청인은 관련 기관과 상담을 하고 법적 절차를 진행하면서 스스로 자존을 회복해 가고 있다. 진술하면서 남들 눈 걱정 없이 감정에 북받쳐 울기도 했고 어감이 다른 단어는 정확히 고쳐 말하기도 했다.
규정에 그 조항을 들어가게끔 먼저 고민하고 노력한 분들께 감사하고,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대리인들은 적극 주장하고 활용하자고 말하고 싶다. 참고로 결과는 시정지시 전 시정(자체적으로 이사회를 통해 피진정인에게 징계 등의 조치를 했음)과 직장내 성희롱 예방교육 미실시에 따른 과태료 부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