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훈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시민의 촛불을 등에 업고 출범한 현 정부는 2017년 8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그중 고용노동부가 관할부서로 돼 있는 노동개혁 관련 국정과제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일자리 창출”(16번), “성별·연령별 맞춤형 일자리 지원 강화”(18번), “실직과 은퇴에 대비하는 일자리 안전망 강화”(19번), “노동존중 사회 실현”(63번), “차별 없는 좋은 일터 만들기”(64번), “휴식 있는 삶을 위한 일ㆍ생활의 균형 실현”(71번) 등이 있다. 임기를 1년 앞둔 지금,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건 노동개혁은 얼마나 충실히 이행됐을까.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일자리 창출” 부분 국정과제로 정부는 일자리위원회 설치,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 사회적 대화를 통한 지역·산업 맞춤형 일자리 창출을 제시했다. 양적으로 충분한 수준은 아니지만 2019년 기준 공공부문 일자리가 전년보다 6.1% 증가하는 등(2021년 1월 발표 통계청 자료)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다만 그 일자리가 노인고용, 단기적 일자리에 불과해 질적 안정성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성별·연령별 맞춤형 일자리 지원 강화” 부분 국정과제로는 청년고용의무제 확대, 청년 추가고용 장려금 지원, 청년구직촉진수당 도입, 경영상 해고제도 개선 등을 통한 청년일자리 보장, 남녀고용평등법 전 사업장 적용 등의 과제가 제시됐다. 이 중 정부의 급부 제공을 통한 고용안정성 향상의 계기는 마련됐다고 볼 수 있으나, 청년고용의무 범위를 확대하지 못했고, 근로자의 귀책사유 없는 근로관계 종료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여성노동자 비율의 소폭 상승에도, 남녀고용평등법 미적용 대상 사업장은 여전하다.
“실직과 은퇴에 대비하는 일자리 안전망 강화” 분야에서는 고용보험 가입 대상 확대, 실업급여 지급수준 및 수급기간 상향 등의 과제를 내걸었다. 예술인과 일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고용보험 적용, 실업급여 수급요건 완화 등 일정 부분 성과가 있었으나, 이른바 ‘한국판 뉴딜’이라 칭하며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것에 비하면 충분한 사회보장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노동존중 사회 실현”과 관련해서는 노동존중 사회 기본계획 수립, 박근혜 정부 2대 지침(공정인사 지침,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에 관한 지침)과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폐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근로자 대표제도 강화 등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과거 정부의 각 지침이 폐지됐고, 최근 뒤늦게나마 ILO 핵심협약 3개를 비준해 일부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발의해 지난해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단체협약 유효기간 상한 연장, 쟁의행위 방식 제한 등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후퇴시키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고, 고용형태의 다양화에 따른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등의 노동기본권에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어 ‘노동존중’ 기치가 충실히 추구되지 못했다. 노동존중 사회 기본계획 역시 가시적으로 수립되지 않았다.
“차별 없는 좋은 일터 만들기” 분야에서는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도입, 비정규직 차별시정 제도 전면개편, 파견·도급 구별기준 재정립,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실현, 특수고용 노동자 보호 강화 등 산업안전보건체계 혁신 등이 언급됐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 산업안전 분야와 관련해서는 일부 개혁이 있었으나,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됐고, 중대재해처벌법도 5명 미만 사업장 적용제외, 인과관계 추정 규정 제외 등 노동계 요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임기 초기 ‘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운 것이 무색하게 최저임금 역시 2020년에 8천270원에 불과해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고,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비정규직 차별시정 제도 개편, 파견·도급 구별기준 등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제도적 정비도 이뤄지지 않았다.
“휴식 있는 삶을 위한 일·생활의 균형 실현”과 관련해서는 주 52시간 근로제도 확립, 육아·돌봄 지원 확대 등의 과제를 제시했다. 가족돌봄휴가 제도 도입 및 가족돌봄휴직 제도 개편 등으로 가족 돌봄을 위한 휴가·휴직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근로시간과 관련해서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주 52시간 상한제 자체는 시행됐으나, 노동계의 반대에도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가 확장돼 주 52시간 상한제 ‘확립’은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현 정부가 지난 4년 동안 행한 노동개혁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 본다. 전체적으로 노동자·실직자 등에 대한 국가의 급부제공 혹은 사용자에 대한 국가의 지원제공 등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정책목표들과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사용자에 대한 직·간접적인 규제를 통해 달성될 수 있는, 그리고 사용자 규제 없이는 달성될 수 없는 국정과제들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귀책사유 없는 근로관계 종료(정리해고)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 비정규직 사용사유 규제 등 사용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부분과 관련해서는 그 달성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조차 개진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에 대한 규제 없이 진정한 의미의 노동개혁을 이룰 수는 없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용자에게 자신의 노동력 상품을 판매하고 그 대가를 지급받아 생계를 꾸려 나가야 하는 노동자의 권리는, 기본적으로 사용자가 의무를 이행하는 형태를 통해 보장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명쾌한 구도를 놓치거나 일부러 외면한다면, 노동개혁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사용자에 대한 규제에 자신 없는 태도를 보이는 정부에 호소하고 읍소하는 것 역시 그다지 실효적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결국 위정자들이 노동자 편에서 노동개혁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노동자들이 힘을 키워야 한다. 마르크스의 말마따나 “사회개혁은 절대 강한 자들이 약해짐으로써 이뤄지지 않는다. 늘 약한 자들이 강해짐으로써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