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기 공인노무사

상담을 하다 보면, 아플 때 휴직을 요구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있는지 묻는 경우가 있다.

근로기준법에 휴직 관련 조항이 있는지 보자. 23조에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조항은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노동자에게 휴직을 명령하는 직권휴직에 관한 조항이다.

본인이 원해서 하는 휴직에 관한 조항은 근로기준법에 없다. 그렇다 보니 노동자가 아파서 휴직을 해야 하는 경우에도 회사가 응할 의무가 없다.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병가규정이 있지 않다면, 병가를 줄지 말지는 사용자 마음이다.

병가가 허용된 경우에도 병가기간 동안 급여를 요구할 권리가 없다. 근로기준법 46조에 휴업수당 규정이 있지만,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휴업하는 경우에만 적용된다. 개인 질병 등을 이유로 휴직을 신청하면 사용자의 귀책사유가 아니어서 휴업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다.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유급규정이 없는 한 휴직 기간 내내 생계곤란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493개 사업체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7.3%의 기업만이 취업규칙 등에서 유급병가를 정하고 있었다.

노동자가 개인 질병·부상으로 일을 못하게 되면 쉬도록 해 주는 것은 상식이다. 쉬는 기간 최소한의 생계도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보통의 노동자에게는 이 같은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다. 법이 상식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보장하겠다는 근로기준법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오히려 질병에 걸린 노동자는 해고 대상이 된다. 사용자는 근로 능력 상실을 이유로 통상해고를 할 수 있다. 병가를 달라고 했더니, 병가 규정이 없다면서 사직서를 작성하라고 연락이 오기도 한다. 사용자의 강요로 사직서에 개인 사정이라고 기재해서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취업규칙이나 단협에 병가규정이 있는 경우에도 안전하지 않다. 병가 기간이 지나도록 병이 회복이 되지 않아 근로를 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면 통상해고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사정은 업무 외 질병, 사고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업무상사고나 질병을 당해도, 산재신청을 하고 나서부터 산재승인이 나기 전까지는 산재요양 기간이 아니기 때문에, 연차휴가를 쓰거나 병가휴직을 낼 수밖에 없다. 업무상질병으로 산재신청을 하는 경우 승인 여부가 결정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근골격계질환은 넉 달 이상(2019년 처리 기간 평균 136.5일)이 걸리고 직업성 암은 이삼년씩 걸리기도 한다. 산재처리가 지연돼 병가 기간을 넘기면 회사가 복귀 명령을 하는데, 아파서 일을 할 수 없다고 하면 통상해고 대상이 된다. 복귀 명령을 어겼다며 무단결근으로 징계해고하는 경우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대부분 법으로 유급병가 제도를 두고 있다. 미국의 세계정책분석센터가 2018년 발표한 ‘개인 질병으로 인한 유급휴가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비교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OECD 34개 회원국 중 유급병가(paid sick leave) 제도가 전혀 없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뿐이다(매일노동뉴스, 2020. 3. 30. OECD 회원국의 유급병가 실태). 미국조차 질병으로 인한 해고를 막기 위해 무급병가 제도만큼은 법으로 정해 두고 있고, 지난해 4월부터 코로나19 대응책으로 2주간의 유급병가 제도를 도입했다.

코로나19 이후 질병의 위협은 일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노동자들에게 ‘아프면 쉴 권리’는 없다. 고장나면 버리는 소모품 취급을 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유급병가라는 법적 권리를 보장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