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

“해고는 살인이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 투쟁에서 계속 듣던 구호다. 정말로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들과 그 가족 30여명이 부당해고 괴로움에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생물학적 죽음이 아니더라도 해고는 분명히 사회적 살인이다. 생계유지가 되지 않으며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 기본권 중 핵심 내용인 노동권을 전면 박탈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노동전문 변호사 출신’이라는 수사를 강조하는 것도 이제 지겨운 일이다. 대통령이 무슨 출신이든 사상과 이념이 어떻든 하등 필요 없다. 헌법과 법률대로만 기본권을 보장하라는 말이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빌딩을 청소하는 노동자 82명이 지난해 11월 집단해고 됐다.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 신분이지만 이전에는 계속해 계약갱신을 해 왔다. 2019년 10월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민주노총에 가입하고 1년여 동안 교섭을 요구하자 형식적 사용자인 하청회사는 교섭을 해태해 어떠한 임금·단체협약도 체결하지 않았다. 조합원들에게 사소한 시비를 걸어 징계하고 고소·고발을 남용하고 모욕과 강요 등 갖가지 방법으로 탄압하다가 결국 업체변경이라는 구실을 들어 조합원들을 집단해고한 것이다. 노조를 만들어서 해고한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해고노동자들은 같은 건물에서 오랜 기간 일한 숙련노동자다. 원청인 LG가 이들을 배제하고 새로운 노동자를 채용할 실익은 없다. 원청인 LG가 마음만 먹으면 이들을 고용승계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반대로 LG가 마음만 먹으면 이들을 통째로 들어내는 계약해지 명분의 집단해고를 할 수 있다. LG는 직간접적으로 ‘트윈타워에 민주노총은 안 된다’는 심기를 드러냈다. 청소노동자들은 빌딩 1층에 연좌했고 건물 밖 노상에도 연대하는 노동자들이 천막을 쳤다. 지난달 25일이 농성 100일차였다. 이들은 “진짜 사장인 구광모 회장과 대화를 원한다”고 한다. 노조를 하는 게 뭐가 문젠지. 일 잘하는 우리를 왜 잘라 내는지. 대화라도 한번 해 보자는 것이다. 청와대 사회조정비서관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하청업체 변경시에 고용승계를 의무화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어디에 갔는지 LG 청소노동자들에게 답하라.

코레일네트웍스·철도고객센터 해고노동자는 225명에 달한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실적을 높이고자 비정규직을 코레일 자회사 무기계약직으로 대거 전환채용했으나 정작 수혜대상이어야 할 고령노동자 정년연장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아 지난해 11월 집단으로 일터에서 쫓겨났다. 55세 이상 고령에 입사한 이들은 기간제 노동자 신분일 때는 70세까지 일할 수 있었으나 무기계약직 전환 후 자회사가 노사타협 없이 61세 정년을 강행해 전환 1년 만에 해고됐다. 이들은 차라리 기간제로 계속 일하게 해 달라고도 했다. 실적 중심, 보여주기식 정책의 민낯이다.

아시아나KO 부당해고 노동자는 8명이다. 대표적인 ‘코로나19 해고’ 사업장이다. 회사는 지난해 초 정부가 내놓은 항공산업 고용유지 지원(고용유지지원금)을 전혀 신청하지 않고 막연히 노동자들에게 무기한 무급휴직을 강요했다. 이를 거부한 노동자에 대해서는 정리해고를 해 버렸다. 노동자들은 노동위원회를 찾았고,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두 곳 모두 부당해고라고 결정했다. 그러나 회사는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스타항공 해고노동자가 가장 많다. 605명이다. 이곳 역시 코로나19 영향을 받은 사업장이다. 노동자는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이메일로 일괄 해고통보를 받았다. 노동자들의 급여는 약 250억원이 체불됐다. 이스타항공의 창업주이자 실질적 사주 또는 사실상 경영자는 현직 국회의원 이상직이다. 국회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이상직 의원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하면서 해결을 촉구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는 정도로 대처했다. 노조는 대량 정리해고 전에 이를 막기 위해 체불임금 일부를 포기하고, 무급순환휴직을 제안했다. 그러나 경영진은 노조의 제안을 전혀 검토하지 않았다. 회사는 해고회피 노력을 하지 않고 회사 가치가 더 낮아지기 전에 신속히 매각해 이상직을 포함한 주주들에게 매각대금을 한푼이라도 더 챙겨 주려 급급했다. 정부는 사태 초반에는 개별 회사 노사 간의 문제이며, 회사가 매각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도 포함하지 않았다. 이상직 일가는 4대 보험료 횡령, 임금체불, 편법증여 및 세금탈루, 공직선거법 위반, 기업결합심사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고소고발돼 수사 중이다. 편법증여 및 세금탈루 사건의 경우 이스타항공 재무총괄 담당이었던 이상직의 조카가 구속기소됐다. 이상직을 포함한 경영진 처벌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스타항공의 지주사인 이스타홀딩스 지분 41.65%는 이상직 자녀 명의로 돼 있다. 노조는 이상직 일가에 대해 “노동자의 고혈을 빨아 호의호식을 누렸다”고 표현한다. 편법증여·횡령 등 불법으로 쌓은 사재를 털어서라도 해고노동자를 구제하라고 외치고 있다.

코로나19 재난 속에서 “단 하나의 일자리라도 지키겠다”고 정부는 약속했다. 다 지킬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부당해고 사업장에는 적극 개입해야 할 것이 아닌가. 우물쭈물하지 말고, 오로지 선거에만 온 힘을 다할 게 아니고, 수천억원의 고용유지지원금과 수십조원의 기업지원금을 우선 부당해고 사업장에 투입하기를 바란다. 노동자를 우선 살리고 보자는 말이다. 그리고 불법이 밝혀진 업체에는 철퇴를 내려 국가적 재난상황을 이윤추구의 기회, 구조조정의 적기로 악용하는 사용자가 다시는 없도록 해야 한다. 불난 집에 들어가 보따리 챙겨 나오는 것도 모자라 이때다 싶어 일부러 집에 불을 내는 사용자들을 정부가 “노사 간 분쟁”이라며 뻔히 보고만 있어서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