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입법 토론회에서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계기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정부는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을 7월께 산업안전보건본부로 승격한 뒤 2023년쯤 이를 독립시켜 외청인 산업안전보건청을 설립할 계획이다. 산업안전보건청은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집행을 담당한다. 큰 윤곽은 나왔지만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준비 정도와 내용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노동부가 TF를 만들어 준비하고 있다는 수준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속도전 매몰 안 돼”

이은주·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11일 오전 국회에서 개최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입법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정부 밀실 논의로는 전문성·독립성을 갖추고 중대재해 예방 소임을 다하기 위한 기구를 만들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대화 등 숙의와 공론화 과정을 통해 제대로 된 산업안전보건청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현재 국회에는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2건이 발의돼 있다. 노동부 장관 출신인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은주 의원이 각각 내놓았다. 여당은 입법 완성을 위해 여야가 합의한 개정안을 다시 내놓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산업안전보건청이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화두는 문제제기에 그치고, 집권당의 정치 일정에 따라 산업안전보건청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설립을 주장했던 측에서도 이렇게 갑작스러운 국면을 예측하지 못하고 세부적 실행계획을 내오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류 소장은 노동자 건강권의 배타적 옹호기관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업 사정, 노동자 임금 등 노사관계 조율에 휘둘리지 말고 안전과 건강을 절대적으로 지키는 기관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기존 산업안전보건 제도의 허실을 명확히 진단하고 이를 보완·개선할 수 있도록 행정조직을 구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류 소장은 “정치적 저울질이 아닌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차원에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을 주장하는 것이라면, 이를 주도하는 정치권은 사회적 논의의 문을 당장 열어야 한다”며 “노동계는 안전과 임금·고용을 서로 교환 가능한 것으로 사고하지 않았는지 성찰하고, 기업도 시대적 가치로서 안전보건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일하다 다쳤다는 사실은 같은 데도 농업인·어업인·자영업자 등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냐 아니냐에 따라 정부 대책을 달리하는 상황은 아무도 합리적이라 보지 않을 것”이라며 “일하는 모든 사람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지는 기관을 만들자고 요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대기업에 안전부담금을 걷어 기관을 운영하고, 독립적·전문적 역량을 갖추기 위해 전문가와 노조 활동가 등이 두루 참여하는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관 명칭을 ‘직업안전건강청’으로 정하자고 제안했다.

“모든 일하는 사람 안전·보건 책임지는 기관 돼야”
노동부 “경사노위에 의견 구하겠다”

강태선 세명대 교수(보건안전공학)는 “그동안 방치된 사각지대 노동안전 영역인 연구실·농업인·어선원 안전과 플랫폼 노동 등 변화하는 노동형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며 “소관부처가 명확하더라도 노동을 포함한 안전영역이라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 조직개편 과정에서 불거질 구조조정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당사자와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장은 “산재예방 기능은 안전보건공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로, 공단의 기능과 역할을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며 “노동시간 변화에 따라 근로감독관과 산업안전감독의 구분이 모호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근로감독·예방 업무를 하는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필훈 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장은 “산업안전본부·청 설립을 위한 실무적 준비를 노동부가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노동부 중심으로만 하기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담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자체 의견수렴으로 충분치 않다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사회적 대화기구를 통해 역할을 정립하는 데 도움을 받겠다”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는 발제자 없이 박미진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이현주 우송대 교수(간호학)·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등이 각자의 의견을 밝히는 방식으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