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총 지역본부, 어떻게 활성화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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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담당자 댓글 0건 조회 1,341회 작성일 21-03-10본문
서울노총 선거를 통해 본 지역본부의 현재와 나아갈 방향
지역본부, 어디로 가야 하나?
시시각각 변화하는 산업의 흐름 속에서 고용형태가 다양해지면서 미조직·불안정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조직·불안정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총연맹이나 산별노조 단위로 대응하고자 했으나 한계에 부딪혔고, 지역을 기반으로 노동자의 삶과 밀착된 지역본부의 역할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최근 선거로 논란을 빚은 서울노총을 통해 현재 지역본부가 가진 문제점을 살펴보고, 지역본부의 역할과 향후 나아갈 방향을 찾아보고자 한다.
지난달 9일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 의장 선거에서 당선된 김기철 당선인(왼쪽에서 세 번째)
논란의 서울노총 의장 선거
지난 2월 8일부터 9일 정오까지 이틀 간 온라인으로 진행됐던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이하 서울노총) 의장 선거가 기호 1번 후보로 출마한 김기철 당선인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당시 출마했던 후보는 1번 김기철 후보(전택노련 서울한성상운노조), 2번 서재수 후보(관광·세이스노련 르네상스서울호텔노조), 3번 정해덕 후보(항운노련 서울경기항운노조)로 총 세 명이었다. 선거결과는 대의원 652명이 참여한 가운데, 기호 1번 김기철 후보가 342표(52.45%), 기호 2번 서재수 후보가 40표(6%), 기호 3번 정해덕 후보가 270표(41.41%)를 득표해, 김기철 후보의 당선이었다.
2021년 의장 선거가 진행될 당시 입후보 자격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 이는 입후보 등록에 필요한 서류 때문이었다. 서울노총의 선거규정에는 입후보자가 ‘정년 규정이 명시된 소속 사업장의 단체협약 원본’을 제출하도록 명시돼 있으나, 기호 3번 정해덕 후보의 경우 항운업종 특성상 해당 서류가 존재하지 않아 제출이 불가능했다. 의장 후보자격 박탈 위기에 놓인 정해덕 후보는 서울남부지방법원에 후보 지위보전을 위한 가처분 신청(서울남부지법 2021카합20031)을 했고, 2월 5일 법원이 정해덕 후보의 손을 들어주면서 후보자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처분 신청이 인용된 후에도 선거를 앞두고 주말 이틀만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는 점이 정해덕 후보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서울노총 의장 선거 과정을 두고 서울노총 조합원들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불공정했다는 비판의 화살을 선거관리위원회로 돌렸다. 일시적으로 위촉된 선거관리위원 입장에서는 이미 명시된 규정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이 없어 난처한 상황이었던 점을 고려하더라도 논란의 지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선거관리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1월 22일 개최된 제3회의에서 입후보자 3명에 대한 서류심사 통과를 의결했으나, 오후 3시 후보 자격에 대한 이의제기가 접수돼 번안동의 안건으로 다룰 것을 명시했다. 번안동의란 이미 의결된 안건에 대해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번안동의를 위해서는 선관위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선관위원 4명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당시 선관위원 5명 중 3명이 찬성, 2명이 반대 의견을 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호 3번 정해덕 후보의 지위를 박탈한 채 후보추첨이 이뤄졌고, 당시 반대 의견을 냈던 선관위원 2명은 사퇴했다.
또한 선거관리규정 제10조에 따르면, ‘선거관리위원으로 위촉된 자가 지역본부 임원으로 입후보하고자 하거나 소속 회원조합의 조합원이 입후보할 때에는 위원직을 사퇴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이번 선거관리위원 구성과 관련해 대표위원으로 선임된 이현기 대표위원이 김기철 당선인과 동일한 택시업종에 속해 있었다.
김기철 당선인은 투표결과가 나온 9일 당시 “선거 진행 중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어 안타깝기도 하지만, 이제는 화합 차원으로 끌어안고 하나 된 서울노총을 건설해야 한다”고 밝혔으나, 일각에서는 서울노총 정상화 연대를 출범해 이번 선거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어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노총에 소속된 전환희 SK텔레콤노동조합 위원장은 “(김기철 당선인이) 당선됐으니까 이후에 고치겠다고 말한다. 공정하지 않은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고치겠다고 말한들, 조합원들이 과연 정당하게 뽑히지 않은 사람에 대한 리더십을 인정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정해덕 후보는 당선된 의장의 직무정지 및 선거불복 가처분 신청을 예고한 상황이다.
내부 조직에 국한되는 지역본부의 한계
지역본부의 문제는 비단 서울지역본부만의 일이 아니다.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가입 산업별 조직 비중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서울노총의 조합원 수는 2020년 3월 기준으로 대략 20만 명이며, 그 중 대의원은 685명이다. 대의원 685명이 소속된 산별조직을 보면 대의원 수가 가장 많은 조직은 택시노련(166명, 24.23%)이고, 그 뒤를 자동차노련(107명, 15.62%), 항공을 주축으로 했던 연합노련(77명, 11.24%, 2020년 3월 기준), 금융노조(60명, 8.75%) 순으로 잇고 있다. 서울노총 의장 선거 시 대의원투표를 원칙으로 한다는 걸 고려할 때 집행부를 대의원 비중이 많은 쪽이 선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서울노총의 근래 15년간 집행부 구성을 살펴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집행부 구성을 보면 2005년 10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당시 연합노련 소속 박대수 의장(현 국민의힘 의원)이 의장직을 맡았고, 택시노련 소속 강신표 의장(현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이 2011년 11월부터 2016년 6월까지, 2016년 6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자동차노련 소속 서종수 의장이 의장직을 맡았다. 이번에 당선된 김기철 당선인도 대의원 비중이 가장 높은 택시노련 소속이다.
또한 대의원 배정기준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서울노총은 조합원 250명 당 대의원 1명을 배정한다. 그러나 단위노조마다 조합원 수가 10명이든 20명이든 대의원 1명을 배정할 수 있다. 이는 단위노조 수가 많은 특정산별조직이 많은 대의원 수를 확보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익명의 서울노총 관계자는 “예를 들어 A 사업장 노조는 조합원이 10명이어도 노조 대표자에게 대의원 자격을 주고, 몇 천 명 조합원이 있는 B 노조에는 조합원 250명 당 한 명을 배정한다. 단위노조 규모는 작지만 수는 많은 조직들이 담합할 경우, 다른 조직에선 누구도 서울노총 의장을 꿈꿀 수 없다”고 토로했다.
특정 산별조직이 집행부를 장기적으로 운영하게 될 경우 조직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더군다나 코로나19로 인해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등 취약계층의 노동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 상황에서 지역조직이 취약계층을 포용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벗어나 내부 밥그릇 쟁탈전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여론의 비판을 면하기는 더욱 어렵다.
문제는 서울노총 의장 선거를 둘러싼 현재의 논란이 취약계층의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부적인 원칙과 절차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나, 그러한 내부 문제 역시 지역본부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 조직인지 그 목적을 염두에 두고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등 취약계층을 포괄하려는 노력의 한 과정으로 내부 문제 해결 과정이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역본부가 조직 확대와 강화의 기반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2월 4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86차 중앙집행위원회 회의
지역본부의 향후 역할은 무엇일까?
한국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 김동명, 이하 한국노총)은 지난 2월 4일 제86차 중앙집행위원회 회의를 열고 노동시장 내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 지난해부터 추진한 연대임금전략을 올해도 이어가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를 위해 한국노총은 지역사회 내 대기업을 중심으로 중소기업을 묶는 연합형 공동근로복지기금 설치·운영 등 방안을 내놓았다.
고용형태가 다양해지고 불안정 노동자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만으로는 불안정 노동자들을 포괄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고, 이를 극복할 대안 중 하나로 지역 차원의 조직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늘어가고 있다. 한국노총이 내놓은 방안은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를 포함한 미조직 노동자, 불안정 노동자를 한국노총 조합원으로 조직하는 데 있어 지역본부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노총 규약(제11조 시도지역본부의 목적)에 따르면, 지역본부의 역할을 △지역 내 미조직·비정규·여성 노동자의 조직화 및 권익향상 활동 △조합간부 양성 및 조합원 교육활동 △노동자의 복리증진 및 문화향상 활동 △쟁의의 공동 지원 및 조정 활동 △기타 한국노총 운동방침의 구현을 위해 필요한 활동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본부의 현실은 새로운 노동환경에 대한 대응전략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기업별로 조직된 노동자 중심의 활동에 그치고 있다.
2019년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이 발간한 ‘노조 지역조직 활성화 과제 연구’에 따르면, 지역조직 활성화를 위해 △산별연맹의 지역지부 가입 의무화 △지역수준 일상활동 개발 지원 △의사결정방식 개선 △지역노동교육상담소 적극 활용 △선거방식 개선 △산별연맹과 지역본부의 역할 분담 등이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지역본부 차원에서 지역노사민정협의회를 통한 사회적 대화 전략을 점검하고, 향후 지역사회 연대 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사업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는 민주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 양경수) 지역본부와의 협력 또한 필요하다.
박현미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역조직이 총연맹의 조직세포로서 인식돼야 하고, 이에 따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노총 중앙 단위에서 지역 사회적 대화 전담부서의 설치로 통일된 지역 참여전략 및 지침이 제시돼야 하며, 지역 활동가 배출 및 지역 내 활동 기반 조성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산업 전반의 빠른 변화가 고용과 노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변화는 새로움을 추진하는 동력이 되지만, 뒤늦게 따라가는 이들에게는 고통을 선사하기도 한다. 노동조합이 새로운 변화에 발맞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중앙 단위에서 모든 사안을 제어하기보다는 지역에 뿌리를 내린 지역조직의 역할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지역본부가 활성화되면 지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삶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변화에 대한 대응도 빨라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역본부 활성화는 한계에 직면한 노조운동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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