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설립한 한국기업데이터㈜는 최근 극심한 내부 갈등을 겪고 있다. 노사갈등에서 촉발해 복수노조 설립 이후 노노 갈등으로 번졌다. 2018년 2월 송병선 대표 취임 뒤 바람 잘 날이 없었다는 표현이 제격이다. 채용비리 의혹을 비롯해 잦은 인사이동과 노동자의 죽음이라는 그늘이 겹쳤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3년간 기업데이터의 갈등을 짚어 봤다.
누가 갈등하는가
기업데이터의 갈등을 파악하려면 각을 세우는 세 곳 주체를 알아야 한다. 송병선 대표와 금융노조 한국기업데이터지부(KED지부) 그리고 지난해 설립한 한국기업데이터노조(KED노조)다. 송병선 대표와 KED지부 6기 현 집행부가 갈등을 빚는 사이 이에 반발해 KED지부 3~5기 집행부 출신 인사와 6기 집행부 선거 당시 낙선 인사들이 주축이 돼 KED노조를 설립했다. 20여명으로 출범한 KED노조는 지난해 송병선 대표와 KED지부 갈등의 반사이익으로 현재 150여명의 조합원이 가입한 1노조가 됐다. 당초 1노조 지위를 갖고 있던 KED지부는 90여명 수준으로 조합원이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송병선 대표는 31일 주주총회를 끝으로 3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KED지부와 KED노조의 갈등을 단순히 전·현직 노조 집행부 간 감정 다툼으로 보는 것은 단편적인 시각이다. 송병선 대표의 경영실적과 성과, 그리고 재임 기간 동안 벌어진 사내 문제에 대한 평가가 결정적으로 다르다. 가장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당국에서 무혐의로 종결된 채용비리 의혹이다.
2019년 7월 금융감독원은 송병선 대표의 채용비리 의혹 제보를 접수한다. 송병선 대표가 지인의 자녀를 특혜채용하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이다. 금감원은 제보에 따라 곧장 강도 높은 감사를 실시했다. 금감원은 기업데이터에 행정지도를 내리고 사건을 검찰로 이첩했다.
채용비리, 모든 갈등의 시작?
개요는 이렇다. 2019년 1월3일 기업데이터는 상반기 공채를 진행했다. 같은달 4~13일 사이 725명이 지원했다. 기업데이터는 서류전형과 인·적성검사를 거쳐 이들 가운데 61명을 1차 실무면접 대상자로 추렸다. 이후 실무면접과 임원면접을 거쳐 합격자 13명을 확정해 발표했다. 이들은 같은해 2월13일 채용됐다.
송병선 대표는 이 과정에서 기획재정부 재직 당시 알게 된 정부출연연구기관 관계자의 자녀 A씨를 특혜채용하는 데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인사평가 과정에서 A씨가 잇따라 서류전형과 임원면접에서 불합격하자 합격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이런 의혹을 제보한 인사부 차장 B씨는 검찰조사에서 “1차 면접에서 탈락한 A씨를 합격자 명단에 포함시키라고 지시할 때부터 둘 사이를 의심했고, 인터넷 검색 결과 A씨 부친 논문의 공동연구진으로 송병선 대표가 참여한 사실을 알게 됐고 채용 이후 기업데이터와 해당 연구기관이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점, 2차 임원 면접에 참여한 송병선 대표가 A씨에 대해 ‘부동산이네, 뽑아야겠네’ 등의 말을 했다는 인사부장의 말을 들어보면 송병선 대표가 A씨 부친과 특수관계에 있어 A씨를 부정채용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송병선 대표는 반박했다. 그는 “기업데이터로 옮긴 이후 (A씨 부친과) 만나거나 연락하지 못했고 채용 부탁을 받은 사실도 전혀 없다”면서 “2차 서류심사 통과자가 97명에서 102명으로 변경된 이유는 잘 모르겠고, A씨 등을 특정해 추가로 통과시키라고 지시한 사실도 없다”고 진술했다. 이어 “1차 (임원) 면접 통과자가 16명 정도로 채용 예정인원 17명에 비해 적었고, 이에 경력·전공·학력 등 우수 인력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 예시로 표시를 하면서 3배수로 늘려서 가져오라고 한 사실이 있다”고 덧붙였다. 임원면접 당시 A씨가 부동산을 전공하고 관심과 열정을 보여 선택했고 다른 임원도 동의했다고도 진술했다.
검찰은 송병선 대표가 청탁을 받았다는 증거가 부족하고, 채용 계획에 따라 각 전형단계별 대상자수를 확대한 것이라고 보고 무혐의 종결했다. 송병선 대표는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미 혐의 종결된 것이고 인사 과정의 정확한 내용을 아는 B씨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꾸며 낸 것을 KED지부가 지나치게 확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A씨 ‘불합격’ 준 부서장 C씨, 지사장 발령 뒤 돌연사
채용비리 의혹 수사가 한창인 지난해 7월 A씨 채용에 깊숙이 관여한 부서장 C씨가 돌연 대전지사장으로 발령받은 뒤 돌연사하면서 문제는 더욱 커졌다.
KED지부는 C씨가 금감원 감사에서 기업데이터에 불리한 증언을 한 뒤 불이익을 받은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기업데이터가 C씨에게 금감원 감사 때 한 진술을 수정하도록 강요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괴롭히다 연고가 전혀 없는 대전으로 부당전보했다는 주장이다. 괴롭힘과 부당전보에 따른 스트레스로 심장마비를 일으킨 C씨가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수 시간이 흘러 사망한 점을 들어 기업데이터쪽 책임을 주장하고 있다.
실제 C씨는 2019년 채용 과정 당시 부서장 서류전형에서 A씨에게 ‘불합격’을 줬다. 이후 금감원 감사에서도 같은 입장을 유지했다. 그런데 돌연 금감원에 “감사 당시 답변이 미진했다”며 추가 소명 의견을 보냈다. KED지부가 입수한 감사 당시 진술서에는 C씨의 필적이 아닌 필체로 기존 진술을 수정한 정황도 드러난다. C씨의 유가족도 언론인터뷰에서 “C씨가 평소 괴로워 죽겠다는 하소연을 많이 했고, 뽑고 싶지 않았던 사람을 자기가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KED지부는 18년 경력의 통계 전문가인 C씨가 돌연 무연고지인 대전의 영업지사장으로 발령받은 것도 부당전보라고 강조했다.
기업데이터는 “채용비리와 부당전보 모두 사실이 아니고, 당시 강도 높은 금감원 감사 이후 송병선 대표가 더 적극적으로 해명하라고 지시해 추가 소명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송병선 대표 역시 “관련성 없는 억지 시나리오”라고 반발했다. KED지부는 재수사를 요구할 계획이다.
이 시점에서 모습을 드러낸 게 KED노조다. 지난해 7월 설립한 KED노조는 “KED지부가 지나치게 사용자쪽과 대립하면서 조합원과 조직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다루지 못해 노조를 새로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KED지부 목소리가 기업데이터 노동자의 전체 목소리는 아니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는 게 KED노조의 설명이다.
현안에 다른 입장 낸 두 노조
새로 결성된 KED노조가 KED지부와 다른 노선을 택하면서 두 노조의 갈등은 본격화했다. 쟁점은 송병선 대표 3년에 대한 평가와 채용비리 의혹 그리고 C씨의 죽음을 보는 시선이다.
KED노조는 송병선 대표가 “호불호가 갈리는 인사”라면서도 “특별히 흠잡을 문제는 없었다”고 평가한다. 하연호 KED노조 위원장은 “업무 스타일이 다소 권위적이라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편”이라며 “그의 재임 기간 동안 600억원이던 매출규모가 1천억원으로 증가했고, 기업CB(신용평가)만 담당했던 것을 넘어 개인CB시장에 진출해 향후 먹을거리 확보에 나서는 등 결단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채용비리와 C씨의 죽음을 연결하는 것도 무리한 주장이라고 했다. 하연호 위원장은 “안타까운 죽음이고 유가족에게 슬픔을 전하면서 모금운동도 했다”며 “무혐의 처분이 난 채용비리와 고인의 죽음을 무리하게 엮어 갈등을 키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KED지부는 의견이 다르다. 우석원 KED지부 위원장은 “매출 증대는 사실이지만 송병선 대표의 치적이라기보다 시장상황에 따라 점진적으로 증가해 왔던 것이고, 노동자가 피땀 흘려 발로 뛴 결과물”이라며 “새로 진출한 개인CB시장은 레드오션이라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자금을 투자해야 할지 모르고, 지난해 강남에 건물을 별다른 계획 없이 매입해 현금을 유출하는 등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맞받았다.
채용비리 의혹과 C씨 죽음이 무관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우석원 위원장은 “채용비리 의혹이 제기되고 금감원 감사를 받았던 관계자가 돌연 무연고지로 전보돼 사망한 사건을, 그리고 유가족이 고인의 피해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을 노조가 가만히 있는 것이야말로 직무유기”라고 반박했다.
갈등·대립에서 촉발한 ‘어용노조’ 논란
이런 대립된 입장은 어용노조 논란으로 비화했다. 사실 초기부터 예상할 수 있었던 대목이다. KED지부의 ‘선명성’에 반발한 KED노조가 회사쪽과 유사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논란은 꼬리표처럼 뒤따랐다. KED지부 6기 집행부와 대립한 3~5기 집행간부들이 현재 기업데이터의 요직에 앉아 있다는 점도 이유로 든다. 송병선 대표가 의욕적으로 출범한 개인CB 사업을 관장하는 개인CB본부장은 전직 위원장 출신이고, 수석부위원장을 역임했던 한 인사는 경영기획본부장이다.
송병선 대표는 “노조 출신과 관계없이 유능한 인사를 승진시켰을 뿐”이라며 “노조 출신이라고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게 더 불공정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KED지부는 지난해 임금·단체교섭도 기업데이터가 KED노조에 힘을 실어 줬다고 주장한다. 기업데이터는 10월 KED지부, KED노조와 각각 개별교섭을 했다. 타결된 임금·단체협약에는 큰 차이는 없다. 단지 KED지부가 상급단체인 금융노조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가 타결한 2020년 산별중앙교섭에 따라 임금을 1.8% 인상하고 절반은 사회적 연대기금에, 절반은 지역상품권 방식으로 지급받는 것과 달리 KED노조는 상급단체가 없어 이를 모두 현금으로 받았다는 점이 달랐다.
KED지부는 교섭 과정에서 사용자가 지부 요구를 배척했다고 주장했다. 우석원 위원장은 “KED지부가 KED노조보다 상향된 조건을 요구하면 배격하고, KED노조의 조건에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교섭태도에 차이가 있었다”며 “노조가 임금인상분 현금 지급 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KED지부를 공격했다”고 말했다.
KEB지부는 “다양한 인사와 사내 포상 등에서 KED지부 조합원들이 조직적으로 배제됐다”며 인사상 불이익으로 조합원을 회유했다는 주장을 했다. 실제 KED노조는 조합원 등에게 “KED지부의 교섭안은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이라며 “잘 생각해 보라”는 내용의 메일을 발송했다.
이에 대해 KED노조는 “임단협은 노조가 협상력을 발휘한 대목”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다수 조합원이 KED지부에서 KED노조로 적을 옮겼다는 사실의 함의를 잘 헤아려 달라”고 전했다.
피폐해진 기업데이터, 정상화는?
노사갈등에서 촉발해 노노갈등으로 이어진 기업데이터는 지금 불안한 상황이다. 이번에는 기관 간 갈등이 불거질 분위기다. 송병선 대표의 임기 만료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후임 대표 하마평이 무성한 가운데 신용보증기금의 인사 개입 가능성이 한때 제기됐기 때문이다. KED노조는 신용보증기금에 “낙하산 인사를 하지 마라”고 요구했다.
KED노조는 “신용보증기금 출신 인사가 과거 전횡을 부리면서 평판이 좋지 않다”며 “이런 불신이 불식될 때까지는 신용보증기금 출신 인사가 오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연호 위원장은 “신용보증기금이라는 조직이나 인사에 결격사유가 있다는 게 아니라 관행과 분위기상 무리한 인사를 추진하지 마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KED지부는 이런 주장이 자칫 기업데이터의 근간을 뒤흔들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석원 위원장은 “KED노조가 해사행위에 가까운 주장을 편다”고 했다. 배경은 이렇다. 신용보증기금은 기업데이터의 모기업이나 마찬가지다. 기업데이터의 기업CB 성과도 신용보증기금이 기관의 보유 데이터를 기업데이터에 독점으로 제공하면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신용보증기금이 기업데이터에 무상으로 제공하던 데이터를 공개하거나 입찰을 붙여 공모를 하면 기업데이터의 신용평가사로서 경쟁력이 저하할 우려가 크다는 게 KED지부 분석이다.
기업데이터쪽은 “600억원에서 1천억원으로 매출규모가 커지는 가운데 기관의 독립경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