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항공우주산업 본관 풍경.<한국항공우주산업>
▲ 한국항공우주산업 본관 풍경.<한국항공우주산업>


노사합의 없이 도입한 포괄임금제는 무효로 봐야 하고, 설령 노사가 약속했더라도 개별노동자가 그 사항을 인지하고 있을 정도로 명확한 합의가 있어야만 적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법원 판결이 나왔다.

1일 한국노총에 따르면 부산고법 창원제1민사부(부장판사 김관용)는 최근 김아무개씨 등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전·현직 노동자 1천421명이 제기한 임금 소송에서 사측이 제기한 항소를 기각하고 원고승소 판결을 했다.

KAI는 1994년부터 2018년 6월까지 연장근로수당을 별도로 지급하지 않는 포괄임금제를 운용했다. 2006년부터는 연장근무수당 명목으로 시간당 1만원의 교통비를 지급했다. 이곳 노동자는 2018년 10월 지난 3년여간 받지 못한 연장·야간·휴일근무수당을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는 1심 재판에서 기본급의 20% 상당이 시간외수당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KAI 전신인 삼성항공이 시간외수당 명목의 자기계발비를 지급했고, KAI 출범 후 자기계발비를 기본급에 포함해 지급했다는 취지다. 노사가 이 같은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에 포괄임금 약정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기본급에 포함한 자기계발비가 시간외수당 명목이라고 명시한 노사 협약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노동자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 과정에서 회사는 새로운 증거를 제시했다. 연장·휴일·야간근로수당을 기본급으로 전환한다는 취지로 노사가 작성한 복지후생 합의서가 등장했다. 포괄임금 약정 사실이 명확하면 시간외수당을 청구할 수 없기 때문에 회사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증거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복지후생 합의서) 기재만으로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포괄임금제에 관한 합의가 있었음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문성덕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포괄임금 약정은 사전에 시간외수당에 대한 포기 성격이 있기 때문에 단체협약뿐만 아니라 개별노동자와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라며 “이를테면 근로계약서에 포괄임금제 운용 상황이 분명히 나와 있으면 약정이 있는 것으로 보지만, 이번 복리후생 합의서는 포괄임금 약정으로 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시간외근로 현황 증명 책임을 완화한 점도 판결 특징이다. KAI는 노동자가 교통비를 청구하면 연장근로시간에 비례해 교통비를 지급한다. 평일 1시간 연장근로는 1만원, 주말 1시간 연장근로는 1만5천원을 지급하는 식이다. 회사는 교통비 지급 명세로는 정확한 연장근로시간을 확인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 관리·감독에 의해 교통비가 지급되고 있기 때문에 회사가 인정하는 연장근로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노조는 “재판부 결정으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받게 됐다”며 “대의원대회를 통해 소송을 결의했고 승리했다. 의미 있는 노조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