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전보건공단노조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6일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계획을 밝혔다. 여야 합의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해 산업안전보건청을 신설하고, 청 설립을 준비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을 산업안전보건본부로 격상해 운용한다는 계획이다. 노동자 안전 보장에 이견이 있을 수 있을까마는 제도는 다른 문제다.

“중요한 것은 내실입니다. 고용노동부가 그간 행정권을 행사해 사업장 감독과 법령 위반에 대한 처벌위주의 사후조치적 역할을 했다면, 안전보건공단은 사업장 기술지원과 재정지원을 통해 산재예방에 집중해 왔습니다. 안전보건청 설립 이후 공단과의 역할분담, 산재예방정책 내실화 등 청 설립에 앞서 논의해야 할 의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황동준(44·사진) 안전보건공단노조 위원장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공단은 안전보건청 신설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조직이다. 안전보건청 신설 논의가 현행 산업안전보건체계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시작하기 때문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매일노동뉴스>가 29일 오후 황동준 위원장을 경남 울산 노조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황 위원장은 1월1일 임기를 시작했다.

87년 공단 설립 당시 산재율 2.66%
“산재율 감소 정체상태, 장기대책 필요해”

- 안전보건청 논의에 앞서 공단의 역할부터 짚어보자.
“공단은 산재예방에 집중한다. 공정안전관리 제도와 유해위험방지계획, 위험성 평가 같은 기술지원과 융자, 클린사업 등 재정지원을 한다. 노동부의 사업장 감독과 검찰합동점검 등 기술적 판단이 필요한 산업안전보건업무에 연간 7천회 이상 동행해 기술지원을 한다. 중대재해와 중대산업사고 조사업무를 노동부와 함께 수행하는데 기술적인 재해원인과 동종재해예방에 관한 사항은 전적으로 공단이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기준 기술사 337명, 기사 971명, 박사 73명, 석사 448명을 보유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산업재해예방 전문기관이다.”

- 그렇지만 산재가 줄어든다고 보기 어렵다. 원인은 뭔가.
“점진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공단 설립 당시인 1987년 산재율은 2.66%였다. 2019년은 0.58%로 나타났다. 산재는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생한다. 현장에서 노동자가 불안전한 행동을 하는 사례도 있다. 문제는 이런 불안전한 행동의 배경이 뭐냐는 거다. 안전설비 하나를 더 갖췄다고 이를 예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산업문화와 정책적인 문제가 크다. 그러나 현행 정책은 여전히 눈에 보이는 설비를 중심으로 한 단기성과에 매몰돼 있다. 당장 올해 산재율을 지난해보다 낮춰야 한다는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 단기적인 사업이 내려온다. 지금은 중장기적으로 정책을 정비하고 산재율을 낮추기 위한 내실 있는 고민을 해야 하는 시기인데 공단의 수많은 전문가에게 그저 사업장에 가서 육안으로 안전설비가 있나 없나만 살피고 오라고 한다. 이런 정책과 거버넌스가 중장기적으로 산재사망을 줄이고 재해를 예방하는 정책연구와 시행을 정체시키고 있다.”

- 안전문화 정착을 강조하는 것인가.
“그렇다. 실제 규정이 있으면 뭐하나.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다. 문화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어떤가. 급속한 산업발전을 이루면서 안전을 강조하면 생산성을 저하한다는 인식이 퍼졌다. 공단이 80년대에 생겼지만 국민적인 화두가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구의역 김군과 김용균씨 등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진 뒤에야 시대적 화두가 되지 않았나. 산재 감소를 위해서는 이제 중장기적인 준비와 정책이 필요하다.”

‘설립’에만 시선 뺏긴 안전보건청 논의
“찬반에 앞서 어떤 정책·조직 필요한지 말해야”

- 안전보건청 신설이 그런 고민의 산물이지 않을까.
“미흡하다. 지금 논의는 예방정책 중심인 공단과의 관계를 도외시한 채 그저 안전보건청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최근 안전보건청 논의를 하면서 미국의 산업안전보건청을 소환한다. 종합적인 산업안전보건기관이지만 우리와 설립 배경이 다르다. 일단 미국에는 공단 같은 조직이 없다. 우리는 근로감독관과 산업재해 전문가를 갖춘 공단이 예방정책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30여년 이상 수행해 온 업무의 전문성이 있다. 안전보건청을 만들면 이후 예방기관인 공단과의 역할 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공단이 갖고 있는 전국적 인프라와 조직망은? 안전보건청을 만든 뒤 현재 공단 수준의 인프라와 전문인력을 갖추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엄청난 예산이 투입돼야 할 것이다. 노동부의 산재예방보상정책국 관계자를 안전보건청에 투입하면 전문성이 바로 생기는가? 아니다. 우리나라 상황에 걸맞은 대답을 고민해야 한다.”

- 안전보건청 신설에 반대하는 것인가.
“지금은 찬반을 말할 때가 아니다. 안전보건청 신설을 찬반 입장으로 가르자는 아니라 산업재해예방정책을 어떻게 가져갈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낙연 대표는 과도기 체계를 언급했다. 속도에 집착하지 않고 당분간 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본부와 공단 체계로 운용하면서 산재를 줄일 수 있는 적절한 체계와 정책을 고민하길 바란다. 장기적으로 안전보건청을 신설하더라도, 그동안 예방정책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면서 점진적으로 진행하길 바란다.”
 

안전보건공단노조
▲ 안전보건공단노조

 


“패트롤 사업은 단기정책, 특고 등 대응 못해”
“단기성과 집착 말고 중장기 대책 내놓아야”

- 어떤 정책들이 있을까. 패트롤 사업은 어떤가.
“공단 예방사업의 핵심사업이지만 평가는 조심스럽다. 공단은 2019년 사고사망자가 116명 줄었다며 패트롤 사업 효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무리가 있다고 본다. 패트롤 사업은 건설업에서 많이 발생하는 낙상사고를 줄이기 위해 2019년 7월 긴급대책 일환으로 시작한 사업이다. 이후 2019년 사고사망자가 116명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패트롤 사업이 집중된 건설업에서는 57명 감소했다. 절반은 다른 업종의 사고가 줄어든 것이다. 패트롤 사업의 효과가 컸다고 볼 수 있을까. 이런 수치를 바탕으로 공단은 지난해 건설업에 제조업을 더해 패트롤 사업을 더욱 강화했다. 비율로 보면 지난해 전체 공단사업의 55%가 패트롤 사업이다. 그러나 산재나 사망자가 줄었는가. 구체적 수치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체감상 그렇지 않다. 패트롤 사업은 사업장을 불시 점검해 육안으로 낙상사고 요인 하나만 살피고 오는 사업이었다. 2년차, 3년차에 접어들면서 사업장도 무뎌졌다. 이런 보여주기식 성과에 매몰돼 검증되지 않은 물량사업이 공단의 핵심 사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안타깝다. 이런 사업은 안전보건지킴이 등 민간위탁 사업에 맡기고 공공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더 정교한 사업을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

- 특수고용직과 농·어촌 안전 같은 새로운 산업안전 이슈도 등장했다.
“그렇다. 안전이라는 화두는 이제 산업현장뿐 아니라 시대적 화두가 됐다. 세월호 참사와 구의역 김군·김용균씨 사망 등으로 국민적 관심과 공감대가 커졌는데 우리 제도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로 인해 사각지대가 크게 드러나고 있다. 안전보건업무가 주가 아닌 부처에서 이런 분야에 역량을 투입하기도 쉽지 않다. 공단도 최근 관련한 정책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일종의 서비스업종 안전보건을 전담하는 팀도 있다. 이런 종합적 문제를 다루는 데 안전보건청 신설 논의가 건설적인 측면도 있다. 다만 마찬가지로 충분한 논의와 인력·예산을 수반한 정책 추진이 필수다.”

- 안전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부각하는 시점에 임기를 시작하셨다. 목표는 뭔가.
“산업안전보건 노동자로서 책임을 다하고 조합원을 지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 전문 노동자의 역할은 앞서 많이 강조했다. 조합원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다. 현재 공단은 지역본부 체계로 운용되고 있다. 그간 건설이나 제조 등 직렬별로 사업조직을 꾸려 일을 했던 체계를 벗어나 지역별 본부를 꾸리고 지역의 산업안전보건 현안을 챙기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제대로 시행하기 어렵다. 조직은 지역본부로 꾸려 놓고 사업은 여전히 직렬별로 수립하기 때문이다. A지역에 건설·제조·서비스 등 직렬별 노동자를 모아 놓고, 사업은 다시 건설부문·제조부문으로 내리니까 지역본부가 작동하지 않는다. 애초 산업안전보건은 지역에 따라 차이를 두지 않는, 원칙적인 문제인데 이를 도외시한 부적합한 체계를 수립했다. 이를 개선해 달라는 게 조합원들의 요구다. 새 집행부도 조합원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이런 문제를 해소하는 데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