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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는 국민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버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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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담당자 댓글 0건 조회 1,413회 작성일 2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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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는 국민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버릴 수도 있다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를 청구하고 직무를 배제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하지만 추 장관이 제시한 근거들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추 장관 기자회견 이후 대검찰청은 이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다만, 추 장관이 제시한 근거 중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과 조국 사건 재판부를 사찰한 보고서가 있다”는 부분은 쟁점이 될 수는 있긴 하다. 그런데 ‘사찰’이라는 프레임을 걷어 내고 보면 침소봉대에 불과한 것 같다. 경향신문은 추 장관이 언급한 보고서가 울산시장·조국 사건 보고서가 아니라 ‘사법농단’ 사건의 자료라고 보도했다. 또한 법무부 감찰은 보고서 작성자들에게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하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추 장관이 제시한 근거들이 진지하게 검토된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지난 몇 달간 추 장관과 더불어민주당은 윤 총장 찍어 내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직장내 괴롭힘이냐“는 비아냥이 있을 정도로 총장 측근들을 좌천시켰고, 이전까지 단 한 번밖에 없었던 수사지휘권도 여섯 번이나 남발했다. 심지어 3주 전에는 총장 징계를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법무부 감찰규정까지 개정해 놓았다. 즉, 직무배제 결정은 근거가 아니라 시기를 보고 이뤄진 것이다.

추 장관의 이런 행동은 청와대 비리에 관한 검찰 수사를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적폐청산의 선봉장으로 추앙받던 윤석열이 검찰개혁에 저항하는 적폐로 내몰린 것도 이들 사건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이후였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지난해부터 논란이 된 청와대 비리 사건들은 검찰이 충분히 수사해 볼 만한 것들이었다.

대통령 ‘절친’인 울산시장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상대 후보 비리수사가 톱니가 물려 돌아가듯 착착 진행되는 상황을 권력 개입 없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친문 진영에 탄탄한 인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대놓고 비리를 저지르고 심지어 영전돼 부산 부시장으로 갔다면, 거기에 어찌 권력의 뒷배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청와대에 재직한 고위관료가 1조원 펀드 사기의 중심에 있는데, 어떻게 청와대의 연루 가능성을 조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수조원의 세금이 걸려 있고 장기적 에너지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사업이 정해진 절차를 무시하고 대통령 선호에 맞춰 결정됐다면, 당연히 검찰이 수사해 볼 사건이지 그것이 어떻게 정책에 반대하는 정치 수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상식과 달리 여당과 그 지지자들은 청와대로 향하는 비리 수사를 검찰개혁에 저항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세상의 선과 악을 청와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에 대한 찬·반으로 나눴으니, 청와대 비리 혐의를 수사하는 윤 총장은 당연히 선에 맞서는 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프레임은 정말로 이상한 것이다. 왜냐면 검찰개혁의 목표가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검찰을 만드는 것인데, 권력을 수사하자마자 악이 되니 말이다.

더구나 이번 직무배제 결정도 그렇고, 추 장관은 검찰이 장관의 ‘부하’임을 강조하며 실제로 부하 대하듯 검찰을 지휘하고 있다. 이는 검찰개혁 취지와 전혀 맞지 않는다. 검찰 제도는 사법부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기소와 재판을 분리한 것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검찰개혁의 목표 역시 사법부와 같은 독립성과 중립성을 검찰도 항상 유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우습게도 검찰개혁 열성 지지자들은 윤 총장이 국회에서 “총장은 장관 부하가 아니다”고 했다고 그를 맹렬히 비난했다. 더구나 현 법무부 장관이 더불어민주당의 대표까지 한 핵심 당원인데도 말이다. 특정 당의 부하가 되는 것이 검찰개혁이란 뜻인가.

추 장관의 막무가내 행동에 대해 대통령은 암묵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갖가지 권력 비리가 연일 터져 나오는 와중에도 대통령 지지율은 40~50% 사이에 있다. 추 장관과 윤 총장에 대한 여론도 반반으로 갈린다. 적지 않은 국민이 문 대통령 개혁에 여전히 호의적 태도를 보인다는 의미다.

나는 이런 대통령에 대한 호의적 태도야말로 민주주의의 진정한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약점은 국민이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결정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군주정이나 귀족정은 폭군이나 과두제를 다른 세력이 타도하면서 몰락한다. 반면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정은 국민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포기할 때 몰락한다. 검찰을 대통령의 부하로 만드는 걸 국민이 법치라고 이해하거나, 법치 자체를 아예 불신해 내 편과 네 편으로 사회를 나누는 질서를 국민이 선택한다면, 이는 민주정의 몰락과 다르지 않다. 법을 이용하는 제왕을 내전의 승자가 선출하는 꼴이니 말이다. 문 대통령과 추 장관의 검찰개혁을 지지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자살로 이끄는 것이다.

국민이 민주주의를 스스로 포기한 대표적 사례는 1930년대 독일 바이마르 정부였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된 바이마르 시대는 겉으로는 활기찬 민주정 체제를 유지했지만, 정치 집단은 서로 비타협적으로 싸웠고, 민주적 제도를 믿기보다 그 제도를 이용해 권력을 확보하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당시 나치는 기득권에 불만이 컸던 젊은 층·중산층·농민·노동자들을 ‘국가 재생’이란 프레임으로 포괄했다. 엘리트들은 민주적 제도보다 비스마르크 시대의 권위주의를 선호해 문제만 생기면 긴급조치 같은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국민은 나치를 선택했고, 국회의원들은 의회를 폐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불만의 연합과 엘리트의 권위주의가 나치의 독재로 수렴한 꼴이었다.

국민 상당수가 문 대통령과 여당의 검찰개혁을 지지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1930년대 독일과 흡사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내 편이 되는 검찰을 공정한 검찰이라는 프레임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국민이 비인격적인 공정한 제도 대신 내 편에게 유리한 제도를 정의라고 믿고 있다는 표현이니 말이다. 국가 재생에 비유할 수 있는 “적폐청산”으로 진영을 묶고, 제왕적 대통령을 앞세워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 역시 당시와 닮았다.

한국 사회 민주주의는 매우 위험한 상태다. 법치를 뒤흔드는 추 장관식 검찰개혁부터 당장 중단시켜야 한다. 그리고 법치와 검찰개혁 방향에 관해 시민 모두가 숙고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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