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여 9일 국회를 통과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은 현행 제도보다 후퇴했다는 비판이 높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은 종사자와 비종사자를 나누고 해고자와 ‘근로자가 아닌 자’를 구분해 노조할 권리를 반쪽만 보장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무력화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가 대거 포함됐다. 특히 노사정 합의안에도 없는 선택근로제 확대는 ‘개악’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힘들어 보인다.
정부안에서 ‘독소조항’ 일부 빠졌지만
‘결사의 자유’도 일부만 보장
이번 노조법 개정은 ILO 협약과 상충하는 법 해석과 적용상 혼란을 막기 위해 추진됐다. ILO 결사의 자유 협약(87호)은 노동자단체와 사용자단체를 자주적으로 설립하고 정부는 이에 대해 간섭하지 않으며, 해산하거나 활동을 정지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근로자가 아닌 자’와 해고자의 노조 가입 금지를 담은 노조법 2조4호 라목 조항이 수정됐다. 해고자 관련 규정은 삭제돼 노조 가입이 가능해졌지만 ‘근로자가 아닌 자’의 노조 가입 금지는 여전히 유지된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ILO가 권고는 해당 조항을 전부 삭제하라는 취지인데 단서(해고자)만 삭제됐다”며 “특수고용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의 노조 가입을 막는 부분까지 삭제해야 ILO 협약에 따른 결사의 자유를 온전하게 보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법 개정안 5조에는 “노동자는 자유로이 노조를 만들 수 있다”는 기존 조항에 2항을 신설했다. ‘사업(장) 종사 근로자’와 비종사자로 구분하고, 비종사자의 노조활동을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따라 소속 기업 조합원이 아닌 산별노조 조합원의 경우 노조활동이 제한될 수 있다.
제한 범위는 모호하다. 개정안에는 “사용자의 효율적인 사업운영에 지장을 주지 아니하는 범위”로 적고 있다. 애초 정부안인 ‘비종사자의 사업장 출입 제한’에서 수정된 것이다. 노동계는 이를 ‘3자 개입 금지’ 조항의 부활이라며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았다. 비록 독소조항은 빠졌지만 모호한 규정으로 대체되면서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비종사자의 피선거권도 제약된다. 17조(대의원회)와 23조(임원의 선거 등)에 사업(장) 종사자만 피선거권을 갖도록 했다. 해고자나 구직자가 기업별노조의 대의원이나 임원이 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ILO 기본협약이 비준되면 충돌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또 다른 독소조항으로 꼽혔던 쟁의행위시 사업장 점거 금지 규정은 ‘노조가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해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로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수정됐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대법원에서 현재 전면적·배타적 직장점거는 정당성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보지만 부분적·병존적 직장점거는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정한다”며 “개정안은 이런 대법원 판례를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개정안 시행 즉시 타임오프 한도 조정
근면위 심의에 ‘연합단체 활동’ 명시
타임오프 한도 현행보다 늘어날 듯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규정도 삭제됐다. 다만 노조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경우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노조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타임오프 한도를 결정하는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는 고용노동부 산하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이관된다.
개정안은 부칙에서 법 시행일을 6개월 후로 하되, 근로시간면제심의위 이관 준비행위는 법 시행 이전에 하도록 했다. 또 법 시행 즉시 경사노위에서 타임오프 한도를 위한 심의에 착수하도록 했는데, 기존의 조합원수와 지역별 분포뿐만 아니라 ‘연합단체 활동’도 고려하도록 해 상급단체 파견 전임자수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한 점이 눈길을 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은 “법 시행 즉시 경사노위에서 근로시간면제심의위를 열어 상급단체 파견 전임자수를 고려해 타임오프 한도를 조정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단체협약 효력 최장 3년으로 연장, 현장 혼란 우려
노동계가 ‘독소조항’으로 지목한 단협 효력 3년 상한은 정부안이 그대로 반영됐다. 현행법에서 단협이 2년을 초과하는 유효기간을 정할 수 없도록 명시한 것을 최대 3년 이내로 할 수 있도록 개정한 것이다. 현장에서 혼란이 우려된다. 현행법은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단협 유효기간에 관계없이 2년으로 하고 있다. 다만 교섭대표노조로 결정된 후 체결한 단협 유효기간이 2년인 경우 단협 효력이 만료되는 기간까지 지위가 유지된다.
유 본부장은 “교섭대표노조가 단협 효력을 3년으로 연장할 경우 최대 5년간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유지할 수 있어 소수노조나 신생노조의 교섭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단협 유효기간은 단위노조 위원장 임기와도 연결된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단위노조 위원장 임기는 통상 2년제가 많다”며 “단협 유효기간을 3년을 연장할 경우 교섭권과 협약체결권을 둘러싼 혼란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노동시간 유연화 확대 ‘초석’ 쌓은 근기법 개정안
근기법 개정안은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 단위(정산) 기간 확대가 핵심 뼈대다. 재계가 줄기차게 요구했던 노동시간 유연화의 빗장을 열어 준 셈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경우 2019년 2월 노사정 합의를 토대로 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이 대체로 반영됐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6개월까지 확대했다.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부여하고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하도록 한 내용이다. 하지만 노사정 합의안은 근로자대표제 개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과반수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경우 사용자가 근로자대표를 일방적으로 지목해 노동시간을 유연화할 수 있다”며 “실제로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한 사업장 70%가 근로자대표와 별도 합의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노사정 합의에도 없는 선택적 근로시간제까지 확대됐다. 개정안은 ‘신상품 또는 신기술 연구개발 업무’의 경우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3개월로 확대하고 1개월을 초과할 때는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 부여·가산수당 지급을 명시했다. 한국노총은 “연구·개발 업무는 전 산업 모두에 해당되고 부수적인 업무까지 포함시킬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