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겨울의 모습을 보자.
법무부 장관은 검찰이 집권세력 중심의 부패 비리를 수사하자 검찰총장을 아예 날려 버리려 한다. 미국이었으면 사법방해죄로 장관이 오히려 법정에 서야 할 판인데, 정부 지지자들은 이를 두고 개혁이라고 칭한다. 180석을 차지한 범여권은 민생과 직결된 법안들은 내팽개쳐 두고, 권력 유지와 관련한 법안들만 기를 쓰고 통과시키고 있다. 심지어 국민과 한 약속도, 여야가 합의한 내용도 제멋대로 바꾼다. 입법 독주를 넘어 입법 사기다. 이 와중에 대통령은 아예 청와대에 숨어 버렸다. 이 시국에도 대통령만 옳다며 고함을 지르는 열성 지지자들이 있다. 이들이 무서워 여당에서도 감히 정부 정책을 비판하지 못할 지경이다. 방역을 이유로 경찰은 정부 비판 목소리를 차단한다. ‘명박산성’이라 조롱받는 ‘차벽’이 다시 ‘재인산성’으로 등장했다.
이것이 2020년 겨울의 풍경이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민주주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독재는 부당한 장기간의 집권을 의미한다. ‘부당함’은 민주정 원리에 어긋난다는 뜻이다. 민주정은 법을 만들 권리, 즉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정치체다. 현대 민주정에서는 국민이 투표로 뽑은 대표가 국회에서 입법권을 행사한다. ‘장기’는 집권 기간에 재집권을 위한 수단을 마련한다는 의미다. 집권의 재생산이 집권의 목표다. 집권의 대상은 한국에서는 당연히 대통령이다.
요컨대 독재는 대권을 잡은 후, 대권을 재생산할 목적으로, 국민의 법을 만들 권리를 침해하는 통치 행위라 하겠다.
이러한 독재를 위한 전통적 수단은 군대였다. 군부 쿠데타로 집권해 주권을 짓밟으며 장기간 대통령직을 유지한다. 박정희·전두환 군부가 그런 사례다.
그런데 독재의 수단은 군대 외에도 다양할 수 있다. 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이용할 수 있고, 여론을 조작할 수도 있으며, 잠재적 정치적 경쟁자의 싹을 잘라 버릴 수도 있다. 국민주권은 심각하게 침해받지만, 선거는 집권세력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해진다. 자유로운 선거가 독재를 정당화하는 방식이다.
이런 형태의 독재를 합법적 독재, 또는 문민 독재라고 부른다. 문민 독재는 군부처럼 군사력을 이용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선거를 이용하기 때문에 겉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민주적이다. 문민 독재는 현재도 남미·동유럽·동남아시아·아프리카 등에서 기승을 부린다. 국가 숫자로만 보면 선거는 민주정이 아니라 독재의 도구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독재자들이 선거 정치를 워낙 잘 이용하다 보니, 한 정치학자는 “민주주의는 투표장에서 죽는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단적인 예는 베네수엘라였다. 진정한 민주주의 건설을 내걸고 당선된 차베스는 저소득층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그는 당선 이후 지지율을 바탕으로 야당 정치인에 대한 부패 수사,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공격, 정부에 따르지 않는 판사 추방 등을 과감하게 벌였다. 국민의 지지로 헌법을 개정했고, 여당에 유리한 법률도 제정했다. 이런 행동들은 개혁에 대한 저항세력, 제국주의 스파이, 반서민적 기득권을 타파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서 이뤄졌다. 그는 군대를 이용하지 않았다. 모든 선거에서 이겨서 권력을 잡았다. 한 비영리단체 조사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국민 절반 이상이 자신의 나라가 대단히 민주적인 나라라고 믿었다고 한다. 물론 국내외 정치학자 대다수는 베네수엘라가 독재 국가라고 평가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다음 세 가지 모습을 살펴보자.
첫째, 법치. 대통령과 여당은 검찰개혁이란 명분으로 제왕적 대통령 밑에 판검사를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는 공수처를 만들었다. 또한 대통령 측근 비리를 수사하는 검찰총장을 개혁 저항세력으로 낙인찍어 해임하려 한다. 전형적이다. 여당과 정부가 법을 이용해 지배하는 모습이다. 법의 비인격적 지배를 뜻하는 법치와는 정반대다.
둘째, 정치. 박근혜는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잘못 사용해 탄핵됐다. 그런데 그 덕분에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더 많은 권력을 가지려 한다. 대통령에 충성하는 180석의 범여당, 판검사를 주무를 수 있는 공수처, 방역을 명분으로 한 기본권 제한까지. 대통령제 개혁이란 시대적 요청을 대통령 권력 강화로 뒤집었다. 현 대통령은 이제 행정부·입법부·사법부 모두를 통제할 수 있는 말 그대로의 ‘제왕’적 권력을 갖는다.
셋째, 여론. 청와대는 소통이 아니라 ‘쇼통’을 한다는 비판이 있을 정도로 이벤트에 능했다. 대통령 연설은 매번 감동적이었고, 도보다리 정상회담 같은 극적인 모습도 만들었다. 소득주도, 노동존중, 권력기관개혁, 공정사회 같은 말들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정작 이뤄진 것이 없다. 최저임금 인상은 하다 말았고, 노동존중은 노동법 개악으로, 권력기관 개혁은 대통령 권한 강화로, 남북관계는 연락사무소 폭발로, 공정사회는 집권세력 ‘내로남불’로 만신창이가 됐다.
참으로 위험하다. 앞서 본 문민 독재의 여러 특성이 한국 사회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서다. 법을 이용해 지배하고, 여론을 조작해 동원하고, 막강한 대통령의 권력을 마음껏 사용한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년 집권론을 말한 바 있다. 인제 와서 보니, 허언이 아니었다. 민주주의의 발전이 아니라 집권의 장기화를 말한 것부터가 불길한 징조였다.
노동계도 이제 이런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래 민주노조 운동은 민주화의 선봉대였고, 민주주의를 일터로까지 확장하는 선도자였다. 보수 정당과 개혁 정당이란 이분법 속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은 태생적으로 ‘독재타도! 노동해방’의 정신을 가진 조직이다. 2021년, 이제 그 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줄 때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