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공기관위원회는 지난해 11월25일 노동이사제 도입을 포함한 합의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2개월간 노동이사제 논의는 전혀 진척이 없었다는 평가다. 오는 2월 국회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재·보궐선거와 대선 소용돌이에 밀려 무산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료사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5년차를 시작했지만 공약이자 국정과제인 노동이사제 도입은 감감무소식이다. 지난해 이미 관련 법안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됐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공기관위원회 합의도 있었지만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오는 2월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법제화하지 않으면 자칫 해를 넘길 수 있다는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경사노위 공공기관위 합의
2월 넘기면 선거 소용돌이 휘말려
경사노위 공공기관위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다. 공공기관위는 지난해 11월25일 노동이사제 도입 논의를 조속히 실시하도록 국회에 건의하고, 제도 시행 이전 공공기관 노사가 합의해 근로자대표의 이사회 참관과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에 정부가 “함께 노력”하도록 한 합의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제대로 된 논의가 실종했다.
노동계는 2월 국회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더 늦추면 자칫 문재인 정부에서 처리가 어려운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공직선거 일정 때문이다. 장욱진 금융노조 부위원장은 “2월 국회를 넘기면 당장 4월 재·보궐선거가 있다”며 “선거 국면을 지나면 하반기부터는 급속도로 대선국면으로 재편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선거 소용돌이에 휘말려 여야 이견이 불가피한 노동이사제 도입 논의가 실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국회에서도 나온다. 노동이사 도입을 뼈대로 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을 발의한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2월 국회 이후 노동이사제 논의를 진지하게 진행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는 노동계의 지적에 공감한다”며 “직접 법안을 발의했기 때문에 챙기겠지만 아직 법안심사소위원회에 묶여 있어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야당 반대 입장 명확해 논의 절실
노동이사제 도입은 여야 이견이 큰 쟁점법안이다. 이전 국회 논의에서도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한 보수야당은 민간기업 파급력을 우려하고, 공공기관 노동이사가 이사회에서 노사갈등을 재연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으며 반대했다. 공공기관위 합의에도 야당이 이런 입장을 쉽게 바꿀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이 노동이사제 도입 관련 법안을 강행처리할 가능성도 낮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정부와 여당이 노동이사제 도입에 의지가 있었다면 벌써 법 개정을 완료했을 것”이라며 “노동계 요구에 정부·여당이 마지못해 보조를 맞추는 형국이라 시기를 넘기면 정권 내 도입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공공기관운영법을 다루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공공기관위 합의 이후 지난해 11월30일 단 한 차례 열렸다.
공공기관위 합의가 경사노위 본위원회에서 의결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 경사노위 본위원회는 지난해 7월28일 이후 열리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회 건의’라는 공식 절차가 없었던 셈이다. 이세종 경사노위 홍보전문위원은 “지난해 7월28일 본위원회 이후 관광산업위원회와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공공기관위 합의가 있었지만 코로나19 재확산과 안건이 많지 않은 사정 등으로 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한국경총이 경사노위 본위원회 참여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어려움이 더 커졌다.
공공부문 노조, 법제화 전 ‘과도기 체제’ 고민
노조추천이사·노동자대표 참관제 고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에서는 ‘과도기 체제’를 고려하고 있다. 노동자대표 참관제 혹은 노조추천이사제다. 지난해 노동이사제를 “손 들고 해 보고 싶다”던 한국전력은 최근 전력노조(위원장 최철호)와 노동자대표 참관제를 협의하고 있다. 최철호 위원장은 “해 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공공기관으로서 제도가 없는 가운데 독자적으로 노동이사제를 추진하기에 부담을 느낀 것 같다”며 “당장 도입이 어렵다면 참관제를 과도기적 체제로 운영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노조가 추천하긴 하지만 노동자가 아닌 사람이 이사회에 입성하는 노조추천이사제와 비교해 기관 노동자가 직접 이사회를 참여하는 참관제는 향후 노동이사제 도입에 앞서 경험을 쌓는다는 측면에서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정윤희 공공연맹 정책실장은 “공공부문 노조 일각에서 노동자대표 참관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늘었다”며 “한국수자원공사를 비롯해 다양한 기관에서 실험 중”이라고 전했다.
노조추천이사제를 고려하는 곳도 있다. IBK기업은행이다. IBK기업은행 노사는 2월 임기 만료를 앞둔 사외이사 후임으로 노조추천이사제를 협의하고 있다.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는 후보를 물색하는 작업에 돌입한 상황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노조추천이사제에 반대하지 않으며, 지부가 적재적소에 적절한 인사를 추천한다면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