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갈등을 겪은 끝에 자회사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했던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원들이 다시 천막을 펼쳤다. 자회사와의 임금협상 과정에서 도로공사가 약속했던 합의사항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사는 자회사 노사의 일이라며 발을 빼고 있다.
한국도로공사서비스노조(위원장 이대한)는 지난달부터 경북 김천 도로공사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12일로 23일째다. 노조 요구는 자회사 전환 당시 도로공사가 약속한 △모회사와 동일한 복지 △직접고용에 준하는 근로조건 △기타 공공기관 지정 △자회사 본사의 판교 입주 등이다.
정부정책 순응했는데 돌아온 건…
상여금·성과급 등 개선 합의 안 지켜져
이들 자회사 소속 요금수납원은 지난 정규직 전환 갈등 당시 고공농성과 공사 본사 로비 점거농성을 하며 공사 직접고용을 요구한 노동자들과 달리 자회사 방식의 전환에 합의했다. 자회사 방식 정규직 전환에 대한 일각의 비판을 감수하며 정부정책에 순응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공사는 고공농성을 한 노동자들은 직접고용한 뒤 요금수납업무에서 배제했다. 결과적으로 요금수납업무에 공사가 직접고용한 노동자는 남지 않게 됐다. 이대한 위원장은 “2019년과 지난해 임협에서 상여금과 성과급에 차이가 있고 도로공사 노동자와 비교해 복지혜택이 열악하다”며 “직접고용된 노동자나 자회사에서 요금수납을 하는 노동자 모두 정부정책의 피해를 본 격”이라고 주장했다.
공사는 자회사 노사 일이라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노조가 요구하는 성과급 등에 대해 자회사와 소통하고 있다”면서도 “정규직 전환 합의 이후 자회사 노동조건에 관련한 노사 대화에 모회사인 공사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며 발을 뺐다.
이런 주장과 달리 공사는 자회사 방식 전환을 주도한 당사자다. 이강래 전 사장은 2019년 자회사 전환 합의 이후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사 요금수납원 직접고용 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긴 부분은 정부 가이드라인”이라며 “내부 논의와 전문가 자문을 거쳐 자회사가 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사실상 ‘용역’ 수준의 자회사
모회사 지원 없이 사태 해결 어려워
그러나 노동자들은 자회사 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두고 “용역업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1년 단위로 용역계약을 하고 예산을 배정받기 때문에 자회사가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려면 공사의 적극적인 예산 지원과 태도변화가 절실하다. 특히 성과급이나 상여금 같은 노조의 핵심 요구안과 차별 없는 복지혜택 등은 자회사가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도로공사서비스 관계자는 “노조와 교섭을 진행하고 있고 모회사에도 노조의 요구를 전달했다”며 “앞으로도 성실히 대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도로공사의 전향적인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이대한 위원장은 “23일째 농성을 하고 있는데 공사에서는 누구 하나 나와 보지도 않는다”며 “지나가면서 농성 인원을 확인하고 들어가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소문에 의하면 오히려 공사 관계자들이 자회사쪽에 왜 다시 시끄럽게 문제를 키웠냐며 다그치고 있다고 한다”며 “사실상 자회사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 지금 형태의 용역계약 방식으로는 자회사의 지원 없이 사태를 해결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