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주류업체인 하이트진로의 하청업체 서해인사이트 관리자가 노동자들에게 “노조가 유지됐을 경우 회사가 문을 닫게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녹취록이 공개됐다. 서해인사이트는 2월 말 회사 청산·폐업을 노동자들에게 통보한 상태인데, 하청회사 폐업 이유가 원청의 노조혐오 때문은 아닌지 논란이 일 전망이다. 전국 호프집에서 하이트 생맥주기계 설치·유지·보수·관리업무를 하는 서해인사이트 노동자들은 지난해 10월30일 노조를 설립했다. 약 두 달 뒤인 지난 8일 서해인사이트는 노동자들에게 “2월 말일로 법인 청산·폐업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나라도 노조 있는 협력사와 계약 안 한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해 11월16·17일 서해인사이트 관리자(소장)이자 교섭위원인 A씨가 직원들에게 발언한 내용의 녹취록을 18일 입수했다. 녹취록에는 노조가 만들어진 지 보름 정도 뒤에 A씨가 비노조 직원들을 모아 놓고 했던 발언이 담겼다. A씨는 직원들에게 “노조 관련해서 방향성이 어느 정도 잡힌 것으로 판단이 됐는데, 지금 상태로 만약 갔을 경우 가장 우려했던 회사가 문을 닫게 되는 케이스가 발생될 것 같다”며 “여러분에게 오픈해서 말이 퍼져 나가서 노조에 가입한 사람들이 노조탈퇴를 하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면, 그 방법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가 계속 유지되면 회사가 문을 닫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 노조탈퇴 움직임을 만들어 보라는 제안으로 풀이된다.
노조가 있는 한 하이트진로가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A씨는 “입장 바꿔 놓고 내가 하이트진로 경영진이라고 생각을 하면 똑같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도급사·협력사를 운영하는데 굳이 노조 있는 협력사를 뭐하려고 계약해서 유지하냐”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 있던 한 노동자가 “노조 만들었다고 계약해지하는 건 불법 아니냐”고 묻자 A씨는 “‘노조 만들었으니까 계약 안 해’라고 하고 계약 안 하겠나. (표면적으로는) 다른 식으로 이야기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재계약 할 때까지) 노조 없앨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정도까지만 해도 시간은 좀 버는 것”이라며 “(노조가 존재하는 한) 회사가 문 닫을 수 있다는 말이 돌았으면 좋겠다”고 거듭 말했다. “최악의 경우는 나라고 살아남지 않는다”거나 “적당한 시기에 내년 재계약 다 끝나고 내년(2021년) 2~3월쯤에 제대로 만들어서 하면 나도 속으로는 응원한다”는 말도 했다.
노조는 “서해인사이트의 폐업 결정에 원청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서해인사이트 태생과도 관련 있다. 서해인사이트는 하이트진로그룹 총수일가 경영권 확보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그룹 총수 박문덕 회장의 장자인 박태영씨가 서영이앤티를 인수한 뒤 2012년 지분 100%를 출자해 설립했고 일감 몰아주기로 성장했다. 그런데 서영이앤티는 차입금 이자비용 탓에 경영이 악화하자 2014년 3월 키미데이타에 지분을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하이트진로그룹이 인수자에게 영업이익률을 5%로 유지하기로 약속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8년 하이트진로에 과징금을 부과하고 박씨를 비롯한 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노조 없어야 끌고 갈 수 있다는 게 회사 생각”
녹취록에는 부당노동행위를 의식한 발언도 들어 있다. A씨는 “회사는 노조탄압이라고 비춰질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기 때문에 노조를 상대로 어떤 액션도 못 하고 있다”며 “노동법은 소장들을 사측으로 보고 있어서 (노조를 없애라는) 이야기를 못 한다. 내가 ‘소장들 다 보직해임 시켜라, 그러면 평등한 입장이 되니까(소장도 노동자가 되니까 이런 이야기 해도) 노조탄압 아니’라고까지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절대 노조탄압이 아니다”며 “어차피 여기 있는 사람들은 조합원이 없다”고 말했다.
노조 관련 논의는 회사 차원에서도 이뤄졌다는 정황도 나타났다. 이 자리에 있던 한 노동자가 “(노조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A씨 생각이냐”고 묻자 A씨는 “대표를 포함한 실무경영진 차원에서 모든 것이 이뤄지니까, 그 정보를 가지고 이 대표와 내가 지난주까지 (이야기해) 왔던 것”이라며 “답이 안 나오니 머리 하나라도 더 보태 방법을 찾아서 해결점을 찾나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A씨는 “대표를 만나고 왔는데 ‘노조만 없으면 끌고 갈 수 있다, 노조가 없는 전제하에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이 회사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