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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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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담당자 댓글 0건 조회 1,354회 작성일 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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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왜 이래  


▲ 손명호 변호사(법무법인 오월)

“변호사님, 잠깐 얘기 좀 하시죠?”

재판을 마치자 법정에 출석한 상대방이 나를 불러 세웠다. 부당해고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도 수개월째 노동자를 복직 안 시키고 임금도 체불하고 있는 사용자다. 코로나19로 인해 회사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 노동자가 얼마나 못된 사람인지 사정을 한다. 자신은 오늘도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법정에 출석해야 했다며 감정에 호소한다.

그를 사건으로만 접했던 나는 무척 놀랐다. 멀쩡한 회사 잘 다니고 있던 노동자를 스카우트해 가더니 3개월도 안 돼서 연봉을 깎지 않으면 자르겠다고 협박한 사람, 얼굴 볼 일 없다며 기어이 음성메세지와 문자로 해고를 통보하고 사무실에 출입하면 무단침입으로 고소하겠다던 사람이다. 동종업계에서 발도 못 붙이게 한다고 협박하고, 다른 직원들을 동원해 해고자를 세상 무능하고 나쁜 사람으로 묘사한 자였기에 머리에 뿔이라도 달린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해고된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부모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다만 해고 노동자는 2년 넘게 임금도 못 받고 취업도 못해 극심한 생활고를 겪은 반면, 그는 여전히 롯데타워 시그니엘에 살고 마세라티를 탄다.

사건은 지난 2018년 2월에 시작됐다. 그(사용자)는 인사팀 직원을 통해 노동자에게 삭감된 연봉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으면 사직서를 내라고 종용했다. 노동자가 거부하자 그냥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음성메시지를 보냈다. 문자로 업무 인수인계를 지시하고 사무실에 출입하지 말 것을 통보했다. 노동자의 책상은 정리됐고 출입카드는 압수됐다. 출근하면 무단침입으로 고소하겠다는 문자도 잊지 않았다. 명백히 사용자의 일방적인 해고통보였다.

그러나 지방노동위원회와 중노위는 다르게 판단했다. 사용자의 위와 같은 발언은 일방적인 해고통보라기보다는 노동자의 자진 퇴직을 촉구하는 취지에 불과하고, 이후 노동자가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등 노동을 제공하지 않아서 근로관계가 종료된 것이므로 해고가 아니라고 봤다. 이미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연봉을 스스로 삭감하지 않으면 사직하라고 종용했고, 사무실 출입을 금하고 출근하면 무단침입으로 고소하겠다고 했는데도 ‘해고’라는 단어가 없으니 해고가 아니라는 판정이었다.

“너 해고!”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형사처벌을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출근해서 노예의 의무를 다하라는 주인의 언어였다.

다행히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행정법원·서울고법·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했고, 그 절차·사유가 위법하므로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단지 홧김에 감정을 표출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용자의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사용자는 해고자를 복직시키고 해고 기간 동안 임금상당액을 지급해야 한다. 2년이 넘는 지난한 법정투쟁 끝에 정의가 회복된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사용자는 판결이 확정된 지 수개월이 지나도록 노동자를 복직시키지 않았다. 수차례 판결이행을 구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한 끝에 노동자는 겨우 복직했지만 한 달 만에 대기발령 처분을 받았다. 경영난으로 구조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대기발령 기간에도 휴업수당을 받지 못했고 대법원이 지급하라는 해고 기간 중 임금상당액도 지급하지 않았다.

부득이 체불임금을 지급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사용자는 중노위에 이행강제금으로 지급할 천만원을 줄 테니 나머지 체불임금 1억5천만원은 포기해달라고 한다. 그럴 수 없다고 하니 어차피 폐업할 예정이니 그거라도 받지 않으면 한 푼도 못 받는다고 엄포를 놓는다. 들리는 얘기로는 채무를 면탈하기 위해 이미 회사 재산을 가족 소유의 다른 회사로 빼돌렸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체불임금 지급청구 소송에 이어 사해행위 취소 소송까지 해야 한다.

악질도 이런 악질이 없다고 생각하던 때 경영상 이유로 노동자를 다시 해고한다는 문서 한 통을 달랑 보내왔다. 나도 모르게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읊조렸다. 그리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디 해 보자. 끝까지 쫓아가서 받아 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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