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을 두고 정부·여당의 발걸음이 더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정기국회 처리를 주문하면서 꺼져 가던 불씨가 겨우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ILO 기본협약 비준 노조법 개정 8일 분수령

6일 고용노동부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따르면 환노위는 8일 오전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쟁점법안 처리를 시도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이 상정된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특수고용직 고용보험 적용을 위한 고용보험법과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특수고용직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을 제한하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도 심사 대상에 오를 전망이다.
환노위는 지난 3~4일 노동법안심사소위를 연속 개최하며 노동법 처리 절차를 밟았다.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조법 개정안 처리에 이목이 쏠리면서 노동계와 재계, 정부에서 깊은 관심을 보였다. 결과는 싱거웠다. 환노위에 상정된 노동관계법 목록을 점검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4일 오전 산회했다. 답답해서였을까. 같은날 오후 청와대에서 반응이 나왔다. 이날 오후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 당부사항이라면서 “공정경제 3법과 노동관련법 등 경제·민생을 보살피고, 선도경제 도전의 기반이 될 법안들도 정기국회 내에 성과를 거두길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 질의가 없는데도 부연설명을 하며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제 안착을 위해 탄력근로제 개선과 관련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통과를 바란다는 말씀이셨다”며 “특수고용직·프리랜서 등의 고용보험 적용을 위한 고용보험법 개정안,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등도 역시 대통령께서 처리를 당부하신 법안”이라고 덧붙였다.

미적거리던 더불어민주당 “정기국회 처리” 재정비

3~4일 법안소위가 성과 없이 끝나자 12월 임시국회를 바라보자는 분위기가 노동부를 휩쓸었다. 더불어민주당도 유사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을 두고 조율을 하지 못한 데다가 국민의힘이 노사 반발을 이유로 처리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 의사가 알려진 뒤 정부·여당 입장에 변화가 감지된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8일 법안심사소위에서 쟁점법안을 처리하고 9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는 것이 목표”라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도 환노위에서 노조법 등을 처리하면 즉각 소집해 ILO 기본협약 비준동의안을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준안 처리와 노조법 개정의 동시처리를 시도하겠다는 얘기다.
더불어민주당의 구상이 현실화하려면 당정 조율이 첫 과제다. 더불어민주당과 노동부는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개최 전후에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 내용 중 노동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항은 무엇인지를 여당이 노동부에 묻는 형태로 대화가 오가고 있다.
노동계는 안호영 의원안이 ILO 기본협약 정신을 정부안보다 비교적 잘 반영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노동부는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부안을 부처 차원에서 수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절대 수용 불가능한 조항 두 가지가량을 정해 둔 상태다. 정부안은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은 허용하되 특수고용직·프리랜서 등은 가능하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기업별노조 임원은 사업장에 종사하는 조합원으로 한정하도록 했다.
안호영 의원안은 원하는 이는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노조 임원도 노조 규약으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안호영 의원안 중 현 노조법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몇 가지 조항들이 있다”며 “노조법 전체를 흔들어야 하는 상황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안 중 노동계가 크게 반발하는 △단체협약 유효기간 3년으로 연장 △사업장 점거형태의 쟁의행위 제한 △비종사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 제한 등에 대해서는 여당과 노동부가 접점을 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과 노동부가 의견을 모을 경우 8일 환노위 법안심사소위는 국민의힘을 압박하는 형태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여당 관계자는 “노조법을 개정하지 못하면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으로 통상리스크가 발생하게 된다”며 “노조법 개정과 비준안의 동시 처리를 기본방향으로 삼고 있지만 노조법 개정이 불발하면 선 비준 후 입법으로 여당이 방향을 틀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