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전환’에 노동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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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담당자 댓글 0건 조회 1,491회 작성일 20-11-10본문
10억 원 투자에 13.6개 일자리 사라진다는데… 노동문제에 대한 구체적 논의 없어
‘정의로운 전환’은 1998년 캐나다의 노동운동가 Brian Kohler가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전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에 대한 대안적인 고용 제공과 교육 및 재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권고에 따라 10월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넷제로(탄소중립.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을 셈해 순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를 선언했다. 그러나 여기서 노동은 보이지 않는다.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는 ‘에너지전환과 전력산업 구조개편 –한국 전력산업의 합리적 통합에 대하여-’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전국전력노동조합(위원장 최철호)과 발전6개사(한국수력원자력, 한국남동발전,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노동조합을 비롯한 12개 전력산업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전력산업정책연대와 혁신더하기연구소가 주관했으며 전력노조 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김정호 의원, 송갑석 의원, 신정훈 의원, 이용빈 의원이 주최했다.
이날 토론회의 발제는 정세은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와 안현효 대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맡았는데, 이들은 《에너지전환과 전력산업구조개편》 연구에 참여하기도 했다. 정세은 교수는 “2019년 WEC(세계에너지협의회)의 주요국 에너지전환 평가에 따르면 한국은 에너지전환 평가 순위가 37위로, 에너지 평등성에서는 좋은 등급을 받았지만 환경 지속가능성 부문에서는 낮은 등급을 받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정부가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제시하면서 에너지전환이 가시화됐지만, 그 과정에서의 일자리 상실 문제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유엔산업개발기구와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가 2015년 발표한 한국 녹색산업 투자의 고용창출 효과에 따르면, 10억 원을 투자할 때 재생에너지 부문에서 16.2개의 고용이 증가하는 반면 화석연료 부문에서는 13.6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봤다. 결과적으로 일자리가 증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직무가 달라지기 때문에 현재 숙련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장담하기 어렵다. 정세은 교수는 ‘정의로운 전환’의 개념을 설명하며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자리 문제가 중요한데, 관련한 전망이나 연구가 적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서 에너지전환 과정에서의 노동문제에 대한 언급은 이게 다였다.
정세은 교수는 ‘노동문제’를 중요한 화두로 꼽았으나, 발전사를 한국전력공사로 수직재통합하면 인력재배치를 통한 전체 노동의 공급과 수요를 조절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만 내놨다. 한국전력공사로의 수직재통합을 통해 과도한 이윤추구를 경계할 수 있고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이해당사자 간 갈등 조정이 가능하다는 전망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정세은 교수에 이어 발제를 진행한 안현효 교수 역시 에너지전환을 전력공급의 효율성과 안정성, 환경성과 공공성의 영역에서만 바라봤다. 한국전력공사로의 수직재통합을 공론화하기 위한 당사자들의 내부 동의와 연대활동, 노사연석회의 등을 제시하긴 했지만, 안현효 교수 역시 에너지전환과 전력산업 구조개편 과정에서의 노동문제에 대해 깊게 다루지 못했다.
이어진 토론에서조차 전력공급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어졌다. 또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문제에 대한 깊은 논의가 있는지, 어떻게 비용문제를 해결하고 갈건지 등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끝까지 자리를 지킨 김주영 의원이 “고용유발계수로 제시한 190만 개 일자리 창출에 대한 근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지만, 토론자로 참석한 이채원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시장과 팀장과 이상규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 신성장정책과 과장에게서 구체적인 대답이 나오진 않았다.
이날 토론을 주관한 최철호 전력노조 위원장은 “아직 에너지전환과 전력산업 구조개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노동문제에 대한 전력산업 노동조합의 구체적인 대안이 있거나 관련 논의를 위한 노정협의체가 구성된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관계자는 “법인화된 발전사를 한전으로 수직통합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고용 관련 논의가 가능하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날 토론회가 시작하기 전, 김주영 의원은 축사를 통해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과 그 이후 과정에서 발생한 많은 문제를 구호로서 외쳤다”며 “그 과정에서 공허함을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메가트렌드’인 에너지 전환과 전력산업 구조개편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문제에 대한 전력산업 노동조합과 정부의 구체적인 논의가 없다면, 이번 토론회 역시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적어도 '노동'을 담아내기 위한 노정 간의 대화 테이블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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